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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경 박사 | 이민한인교회들을 위한 노인목회의 방안 1 2019-06-12 10: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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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론
이 논문을 쓰게 된 동기는 2013년도에 어느 민간 요양원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73세의 한국 여인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 편에서는 어머니를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잘해주는 곳을 택하여 잘 계실거라 생각을 하고, 자식으로서는 최선을 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신경마비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몸의 반신을 쓰지 못했으며,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말을 할 수가 없는 노인이었다. 먹는 것도 영양가 있다고는 하나 ‘ENSURE’만 하루 종일 마시고 있었다. 자식은 2주에 한번 방문한다고 했다. 그 분은 일주일에 3번 방문하는 내 손을 붙들고 만날 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눈물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나는 너무 외롭고, 쓸쓸해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 밤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자식과 부모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으로서는 최선을 다 했지만, 자신의 체면과 위신이 먼저였고,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식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살필 수 없으니 최고의 시설에 위탁한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 몸이 불편하거나 언어 소통이 되지 않고, 먹는 음식도 다를 노인들의 심적,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면이 걱정이 되었다. 오래 전에 이민 오신 부모님들의 노후가 염려가 되며, 한국인 요양원이 뉴욕에 있다고는 하지만 노인 인구에 비해 어림없다는 말이다. 고령화가 되어가는 이민 한인사회와 교회들이 앞으로 노인에 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연구 배경

(1) 이민 한인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변천
 이민 역사를 보면 1902년 12월 22일에 101명의 한인들이 미국 상선인 겔릭호를 타고 이천항을 출발하여 1903년 1월 13일에 호놀룰루에 도착함으로 시작되었다. 이들 중 한국 인천내리감리교회(담임목사 조원시 선교사)교인들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최초의 정치 단체라 할수 있는 최초의 이민 교회를 1903년 8월 7일에 “신민회”라는 이름으로 조직했다. 발기인 중에는 뉴욕한인교회 3대 목사인 윤병규 목사와 안정수가 활약했다. 또 뉴욕 맨하탄에서는 같은 해 11월 3일에 “한인감리선교회”가 조직되었는데, 이것이 하와이에 있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의 전신이자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인교회의 시작이라 할수 있다. 미국 뉴욕한인교회의 창립은 1921년으로 추정되며, 초대목사는 임창영 목사였다. 맨하탄에서 최초의 보금자리로 1923년 7월 5일에 뉴욕한인교회의 헌당식이 있었다. 헌당식에는 거류민 백여 명이 참석했고  그중에 60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교회는 성경공부와 노동자를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로 강좌를 실시했다. 이 당시 성도들의 공통점은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의 주권과 독립을 찾고자 하는 애국심이었다. 그후 1927년에 21가에서 115가로 자리를 옮긴 주된 이유는 신앙보다는 독립운동,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더욱 관련이 깊은 사건이라고 말할수 있다. 1920-1930년대 뉴욕한인교회의 교인 명단을 보면, 많은 사람를이 직업란에 “노동”이라고 적었다. 이들을 조사해보면 상당수는 이전에 학생이었거나 학생인 것이 드러난다. 미국 유학생총회의 기관지였던 <우라키> 잡지를 보면 거의 매호마다 유학생들의 체험기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뉴욕한인교회의 역사를 기리고자 하는 역사적 입장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뉴욕한인교회가 이국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휴식과 위로를 제공하고, 민족애를 발하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교회이자 한인기관이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는 의미다. 또한 25명 가량을 기숙시킬 수 있는 장소와 한인들을 위해 그들의 사회생활의 중심 내지는 집을 제공하는 것이 뉴욕한인교회의 또 다른 특색이었다.

 

뉴욕한인교회가 1927년에는 학생들(주요 구성원)과 이민자 그리고 정치적 망명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창립 당시의 교인들은 1880-1890년 출생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소수의 교인이었지만, 교파도 다양했고, 출생지도 다양했다. 해방 후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정치에 참여했으나 남은 자들은 교회를 잘 이끌어 갔다. 이들이 미국에 오기까지 또 온 이후에 겪은 고생은 눈물과 피땀의 서사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뉴욕 땅에 뿌리를 내릴 당시 한인들의 성실하고 열성적인 면모를 잘 증언해 주었다.

 

윤혜경 박사

목회학 석사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현 뉴욕시 노인 사역 연구와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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