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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교수의 조직신학 강좌 48 2019-06-14 16: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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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믿음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다. 여러가지 오해들 중 첫번째는 믿음을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적인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믿음이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적인 지식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 지식 자체가 믿음인 것은 결코 아니다. 지식은 지식이지, 지식이 믿음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두번째 오해는 믿음이 어떤 사실에 대한 감정적 동의나 공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실에 대한 감정적 동의나 공감이 믿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그런 감정적 동의나 공감이 믿음인 것은 아니다. 호감은 호감이고, 공감은 공감이다. 호감과 공감이 결코 믿음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 무엇인가? 우리 기독교진리와 관련하여 말하면 믿음이란 신뢰이다. 믿음이 신뢰라는 말은 믿음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어떤 인격에 대하여 가지는 것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란 어떤 인격이 다른 인격에 대하여 가지는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인격적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믿음의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일 때에야 비로서 우리의 믿음은 참된 믿음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개혁신학에서는 참된 믿음의 요소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는 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것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 지식이 믿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식은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이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감정적 동의이다. 즉 예수님에 대한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음으로써 그 사실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호감을 갖는 것이다. 즉 예수님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감 역시 아직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두번째 단계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의지적 신뢰이다. 예수님의 인격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의 신실성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 그리고 인내와 오래 참으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세번째 단계에 다다라야 참된 믿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지식적 요소, 감정적 요소를 포함하지만 그런 단계에서 머물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인격적이고 의지적인 신뢰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란 사실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 신뢰가능한 인격, 믿을 만한 인격, 의지할 만한 인격일 때에만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믿을 수 있게 된다. 믿음의 대상이 신뢰할 만하지 않고 믿을만 하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그를 믿고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믿을 만한 분이시고, 신뢰할 만한 분이시고, 의지할 만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우리 믿음이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은 우리의 믿음 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구원도 은혜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는 통로인 믿음도 결국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결코 인간의 업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며, 그 선물을 받는 통로인 믿음 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선물은 선물을 주는 자가 획득하거나 이루는 것이지, 선물을 받는 자가 획득하거나 성취하는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정성욱 목사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큐리오스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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