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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목사 | 14만 4천명,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계 7:4, 14:1,3) 2020-03-21 0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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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4천명,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성경에 14만 4천의 사건이 두 번 나타난다.
첫 번째는 계시록 7장 3-4절에 일곱 째 인을 떼기 전에 저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을 말해준다.
두 번째는 계시록 14장 1-3절에 일곱 째 나팔을 불고 난 후 시온산에 재림하시는 재림 예수와 함께 있는 자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14만 4천은 악한 세력, 즉 용(사단)과 싸우는 해입은 여자의 남은 자손(계 12:17)이며, 또 666(계 13:18)의 악한 세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긴 하나님의 정예군인들로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자들을 말한다.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들 중에는 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14만 4천명이 자기들만의 교파나 교회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14만 4천의 숫자가 다 채워져야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말하며 자기들의 교세 확장에 전력하는 이단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사건들은 분명히 순서(질서)적으로 일어난다.
하나니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1-6일의 질서를 이루며 순서대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7일째 되던 날 쉬셨다. 만약  창조하신 것들의 날짜가 뒤바뀌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창조 전의 혼돈과 흑암(창 1:1)과 같았을 것이다. 성경은 또 질서의 하나님께서 종말의 사건들도 그 순서(질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즉, 인 떼심, 나팔 부는 재앙, 대접 쏟는 재앙이 각각 1-7의 순서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성경의 확실한 정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14만 4천명에 대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 기록은 계시록 7장 1-8절로 그리스도께서 여섯 째 인 떼심과 일곱 쨰 인 떼심 사이에 있는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 14만 4천 명의 이마에 인 치심을 말해주며 이스라엘 각 지파에 1만 2천명씩 12지파로 14만 4천명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기록은 계시록 14장 1-5절이다. 저들은 짐승의 표(숫자로 표시하면 666)를 받지 않았던 자들로(계 13:16-18)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산에 있게 되어 대환란을 통과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고 휴거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이다.
 
14만 4천에 돼 단 지파가 빠지게 되었을까?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야곱)의 아들은 12명으로 이들이 십이 지파였다. 이 때 이스라엘 가족들의 모든 장자는 다 하나니께 속했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장자를 대신해 레위인을 취하셨다(민 3:44-51). 그리하여 십이 지파에서 레위 지파가 빠지게 되었고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을 대신해 십이 지파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계시록 7장에서 14만 4천을 세우는 지파가 다시 젼경된다. 단 지파가 빠지고 다시 레위 지파가 들어가게 되며, 므낫세 지파는 그대로,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지파를 대표해 요셉 지파라고 그 명칭만 바뀌었다.
왜 단 지파가 빠지게 되었을까? 창세기 49장 17절은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단 지파의 후손들은 자기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어 세웠고, 금 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지역 이름)에 세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게 했다(왕상 12:28-30). 또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분배해 주셨던 지역에서 떠나 자기 마음에 좋은 북쪽으로 이주했다. 결국 단 지파는 그 시작과 그 끝이 달랐던 것이다. 신앙의 시작은 바른 것 같으나 그 끝이 완전히 다른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은 단 지파와 같은 자들일 것이다.

“그 때(종말)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그러면 과연 14만 4천은 누구인가?
성경학자들에 따라 여러 주장이 있는데, 첫째는 저들이 다 유대인이라는 견해이다. 이들은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로 14만 4천을 이스라엘 12지파로 열거하고 있기 떄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계시록 4징 1절에 “이리로 올라오라”라는 해석을 ‘성도들의 휴거’로 본다. 그 후 지상에 환난이 시작된다. 7장 4절에서는 불신자들이 지상에 남아있는데 환난 중에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어 구원 받게 되는 자들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이 성도들의 휴거가 아닌 사도 요한에게 한 명령임이 분명하기에 신빙성을 얻지 못한다고 본다.

 
둘째로 14만 4천의 숫자나 12지파는 모두 상징이며 14만 4천은 지구상의 모든 구원 받는 성도들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롬 2:28-29)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다. 14만 4천이 실제 유대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예수 믿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된다고 보면, 어찌 구원 받은 성도들의 숫자가 14만 4천명만 되겠느냐는 반문이다.
 
물론 이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14만 4천은 여섯 째 인 떼심과 일곱 쨰 인 떼심 사이에 나타나며(계 7:4),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의 이마에 어린 양(성자)의 이름과 그 아버지(성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 자들이다(계 14:1)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14만 4천을 모든 구원 받은 성도라고 확대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계시록 7장 1-8절에서 14만 4천을 말한 바로 다음 9절에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14만 4천’과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와는 구별된다.
 
셋째는 필자의 견해이다.
계시록 7장에 처음 나타난 14만 4천은 7년 대환란을 충성과 인내로 통과하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정예 군인(특별히 세운 믿음의 용사)들이다. 계시록 9장 4절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12장 7절은 “그 여자의 남은 자손(14만 4천)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인 맞은 자)들”로 용(사탄)이 저들과 싸울 준비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즉 666의 사탄 마귀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하게 되는 하나님의 정예 군인들, 즉 죽음을 보지 않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신실한 주님의 사람들이다.
 
그러면 14만 4천은 이스라엘 지파 만일까? 그리고 그 숫자는 정확한 것일까?
필자는 이스라엘 지파에만 속하지 않으리라 본다. 현재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섯 째 인 떼심 후에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족속과 방언들을 구별하여 모든 믿는 자들을 새로운 12(행정의 완전수)연대로 나누고, 각 연대에 12,000(행정의 완전수12x1000명)으로 도합 14만 4천명을 세우실 것이다.
 
그렇다면 14만 4천은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자들인가?
계시록의 기록된 종말의 사건들, 즉 어린 양의 인 떼심을 순서적으로 살펴보면, 아직 여섯 째 인을 떼는 시기가 지나지 않았다. “내가 보니 여섯 째 인을 떼실 때에는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가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계 6:12-13)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후에 하나님께서 14만 4천을 선정하여 그의 인 치심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 14만 4천은 7년 대환란과 666시대의 악한 세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악한 세력과 싸워서 이기며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하나님의 정예군인들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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