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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섭교수 | 루터의 설교관 : “말씀하시는 하나님”(Deus loquens) (1) 2020-03-28 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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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하나님관은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판 루터선집 (Luther's Works-American Edition)의 공동 편집자인 야로슬랍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하나님의 말씀하시기(the speech of God)이며, ‘말씀하시는 하나님’(the God who speaks)은 루터의 하나님관을 요약하는 적합한 방식일 것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Deus loquens)의 임재의 자리는 무엇보다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이다. 이를 주제로 한 윌슨(H.S. Wilson)의 박사학위 논문의 요약을 여기에 소개한다.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하라고 의도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위엄은 무한하고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것이다... 형제여, 들으라.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의 설교자들을 통해 당신과 말씀하신다... 하나님 말씀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다.”
 
주일 아침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물론 설교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설교자와 평신도는 설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하면서 어떤 전문가가 종교나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을 들을 생각을 한다면 설교의 목적은 잃어버린 것이다. 또한 설교자가 회중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안전한 설교’를 준비했다면 역시 설교의 목적은 잃어버린 것이다.
 
설교에 대한 루터의 공헌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재발견이다.
 
매클라우드(Donald Macleod)는 말한다: “인기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설교자의 광적인 노력으로 인해 설교가 약화되었다. 여기서 ‘인기 있는’은 ‘귀에 착착 감기는’ 설교나 ‘매력적인 설교자’의 설교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회중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 그리고 오직 이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다시 오게 만드는 메시지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설교는 수사(능변), 곧 인간이 인간들에게 말하는 행위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이는 지식 탐구자들에게 주는 전문가의 강의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신다는 전체 성경적 시야는 상실된다. 루터의 공헌은 설교에 대한 성경적 이해, 곧 말씀하시는 하나님(Deus loquens)의 재발견이었다. 설교는 인간의 말(담화)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설교자들을 통해 개인들에게 말씀하신다.
 
설교자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1970년대에 페닝턴(Chester Pennington)은 많은 설교자가 설교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의심한다고 지적 했는데 이는 오늘날 더 맞는 말이리라. 설교자들이 대면하는 문제는 “전문가로서의 정체성 위기”이다.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거의 지지받고 있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들의 신학에는 명료함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그 결과, 많은 목사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 대해 자신감을 잃을 때 설교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권위가 있으면서도 사랑하시는 말씀을 말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주고 그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설교자는 자신의 소명을 알아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무엇에 부름(소명)을 받았는지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격동의 시기에 붙잡을 수 있는 정체성이다. 루터는 설교 직무로의 ‘소명’(사람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온다) 설교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루터는 자신이 불확실성의 문제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설교직무의 소명(신적이면서 인간을 통한)에서 위로를 찾았다고 했다: “하나님은 내 입을 여셨으며 내게 말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리라... 내가 사는 동안 침묵하지 않으리라. 그리스도의 의가 해처럼 빛나고 그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등불처럼 빛날 때까지... 내가 사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이 일에 있어서는 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갖고서 자랑할 수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에게서 오는 소명을 가리키는 것보다 더 목사를 위로해 줄 방법은 없다. 이 소명을 무시하고 자신을 의지할 때 그는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의 위기를 반드시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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