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뉴스홈 > 신학 전체보기 > 상세보기
프린트
제목
조철수 목사 | 위로에 동참하는 영성 2020-07-31 14:12:37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인간은 자기위로능력을 갖고 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글래스만(Glassman Edward J)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때 생긴 스트레스를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차분하고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능력을 자기위로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사람마다 심리적으로 요동치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용하고 탈출한다. 이런 자극을 해결하고 해소하지 못하면 정신적 충격, 불안감, 우울증 등으로 발전하여 심리적 혼돈상태를 겪게 된다. 적극적으로 심리적 요동을 헤쳐 나가는 자기위로능력을 갖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래스만은 자기위로 능력을 4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신체적 위로하기(physical soothing)를 실행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감정적으로 좋지 않을 때 타인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의 포옹은 심리적 요동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된다. 또 스스로를 다독이며 적절한 운동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다. 회복력(resiliency)은 심리적 요동에서 얼마나 빨리 회복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자기반응이다. 회복하기 위한 자신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다고 해서 술과 유흥, 도박과 외도, 약 중독에 의지하면 찰나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죄악의 유혹이다. 이는 더욱 회복능력을 떨어뜨린다. 자신의 감정적 반응이 어떠했는지 깨닫고 극복할 수 있도록 건전하고 긍정적인 회복 방법을 찾아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심리적 요동, 감정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 그 시각에 눌러야 할 회복 버튼을 항상 준비하여 작동시키는 자신의 회복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자기노출(disclosure)은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와 감정을 신뢰할 만한 타인에게 드러내고 대화함으로써 심리적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보통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 오히려 사람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주위에 있는 지인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고 말해야 한다. 곁에 가족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지만 친구, 목장의 목자, 사역자들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밝혀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왜 얘기 안 했는지, 왜 이제 와서 밝히는지, 왜 이 시점에서 말하는지 등등 피해자는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을 자신이 짊어지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지인에게 노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하기(self-soothing)이다. 스스로를 달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능력이다. 자신 안에 있는 선한 영 곧 성령님과 대화하며 악한 영의 훼방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자기위로능력이 성장 시기에 부모님의 공감과 상호교류에서 획득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공감과 위로를 거울처럼 반영해 주고, 안심하도록 위로해 주고 긴장을 풀어주며, 함께 있어 줌으로써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노력이 자녀들에게 자기위로능력을 강화해 주어 심리적, 감정적 어려움이 닥쳐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부모님으로 받은 위로 경험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하고 불안한 정서를 다스리는 자기위로능력이 떨어진다.

 

자기를 진정시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위로 기능이 떨어지면 약물에 의존하게 되고 중독되게 된다. 부모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하면 공감능력이 내재화 되지 못한 채 성장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심리적 감정적 요동을 극복하기 어려워진다. 현재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거나, 유튜브를 못 보게 하는 것, 틱톡을 못하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적 고립과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이 절제하고 극복하고 스스로 위로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부모세대가 먼저 공감하고 기다려 주는 성숙한 인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가 공감할 수 없는 환난이 있다면 아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사랑과 자비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위로능력을 증강시키도록 신앙으로 붙잡아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난과 고난은 피해가야 할 난관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통로이다. 환난과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실존의 필요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환난과 고난 속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도성을 의심받고 반대하는 이들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선포하고 환난에 동참하여 위로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했다면 위로에 동참한 것이다. 이 위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올 뿐만 아니라 위로에 동참하기로 결단한 자신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오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십자가의 고난으로 초대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에 채운다고 고백하면서 이 고난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함께 고난에 동참하도록 권한다(골 1:24). 죄 없으신 예수님이 당한 메시아적 고난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영광도 함께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가 받으면 그리스도가 받을 영광의 상속을 성도가 받게 된다(롬 8:17). 환난의 때, 고난의 시기에 더 큰 위로를 바라보며 버티고 이겨 나가야 한다. 자비로우신 아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환난과 고난을 공감하시고 이해하시고 격려하시고 도우신다.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31991236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임영희 목사 | 세대를 이끄는 기도의 사람 - 엘리야 4 (2020-07-25 12:17:54)
다음글 : 김근태목사 | 종말의 징조는 무엇이며 지금은 어느 때일까? (2020-08-01 04: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