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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 목사 | 세대를 이끄는 기도의 사람 - 엘리야 13 2020-10-10 14: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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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⓵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열왕기하2:14)

따라야 할 표지석이 되어
자신에게 일어난 형편과 상황을 보며 낙심과 침체에 빠졌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서 회복됩니다. 그 회복은 다시 하나님께서 하라시는 일을 이루며 완수해 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회복된 엘리야에게 맡겨진 구체적인 일들의 내용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다메섹의 하사엘이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고, 예후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이어 나갈 선지자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기도의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과업입니다. 엘리야는 세대를 이끄는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짐이 어떤 모습을 갖는 것인지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록된 말씀에 대한 확신과 열정으로 일어서는 모습,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복종의 훈련을 통하여 성장과 성숙을 갖추어가는 모습, 그 성숙함으로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걸어야 할 자리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 작은 조각 구름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응답을 바라보는 모습, 인생에서 빠질 수 있는 침체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그들에게 기름 부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로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세대를 이끄는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이어갈 다음 세대,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갑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도록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일,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세우는 일, 그것은 학교, 학원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학교에 맡겨 놓고 많은 정보를 알려 주고 암기 시키며 익숙하게 해 주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꼭 가져야 할 바른 생각과 태도의 모습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다음 세대들이 갖도록 해 주기만 할 일이 아닙니다. 그 모습은 사실 부모의 세대, 기성 세대가 먼저 가져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보를 가르쳐 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앞 선 세대인 나의 세대를 보고 따라 오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여 주는 것은 없는데 정보만 주면 그것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기보다 오히려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고 배우며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든 모습은 분명히 따라야 할 표지판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4:16)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곧 자신을 본 받으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본 받는 모습이 된다는 것이죠. 그만큼 바울 사도는 자신을 교회가 따라야 할 표지석되는 삶을 걸어간 것입니다.


부모 세대, 기성 세대, 선배 세대인 앞 선 세대는 다음 세대를 향하여 예수님처럼, 바울 사도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나를 따라 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는 이 모습이 영원한 가치와 영원한 보람이 있는 인생의 모습임을 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여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가 마땅히 따라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그 모습을 제자인 엘리사에게 고스란이 보여 주고 엘리사는 그 모습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세대를 이끄는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엘리사의 모습 가운데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 그리고 다음 세대를 어떤 모습으로 세워가야 할 지를 배우게 됩니다  

 

인생의 무게를 실어야 할 곳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자신의 인생의 무게를 실을 줄 아는 모습으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기 인생의 무게를 싣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공포감을 갖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과 그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공포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갖게 되는 하나님을 향한 존중감이며, 그것은 나의 삶의 무게를 하나님과 그 말씀에 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엘리야와 엘리사의 만남의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내려와 다시 이스라엘로 옵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회복된 엘리야가 처음으로 한 일이 엘리사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만남의 자리는 다른 곳이 아니라 엘리사가 자신의 삶에 성실히 일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열두 겨리의 소, 곧 스물 네 마리의 소를 갖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엘리사의 집안 농사 일이 제법 규모가 있는 농사의 일이었음을 보게 합니다. 엘리사 자신도 성실하게 열두번 째 순서로 한 겨리의 소를 몰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야가 나타나서 굳이 열두번 째에 있는 엘리사에게로 와서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가 있는 자리에 던집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엘리야에게 달려 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와서 엘리야를 따르게 해 달라고 허락을 구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엘리야가 시치미를 뗍니다.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열왕기상 19:20).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이런 말을 하느냐는 거죠. 그런데도 엘리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부르심을 듣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자신이 사용하던 한 겨리의 소 두 마리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합니다. 그리고는 엘리야를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됩니다. 
 

엘리사의 이런 태도는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히 여기는 사람인지를 보게 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슬쩍 행동하고 시치미까지 떼는데 엘리사는 선지자의 행동을 보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부르심을 봅니다. 한 참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겉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실 짜증나는 행동입니다. ‘왜 옷을 벗고 저러시나? 날씨가 더워서 그러시나? 옷을 벗으셨으면 곱게 옆에 두시지 왜 일하는데 방해가 되게 저러시나? 하실 말씀이 있으면 나중에 하셔도 되겠구만’ 하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마음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잠언은 말하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3:5,6)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인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길을 발견하게 되죠.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구체적 행동이며 하나님께 자신의 삶에 무게를 두는 모습입니다. 엘리사는 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엘리사 앞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엘리야가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누구인지 압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사건을 압니다. 지금 밭을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엘리야를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큰 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얼마나 감사와 희망으로 가득한 노동의 순간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엘리야가 자신이 일하는 현장까지 온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의 통로 되었던 엘리야가 다른 사람이 아닌 열두번 째 소를 몰고 있는 자기 앞에 개인적으로 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엘리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순간 알아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으로 나타나는 일의 통로인 선지자 엘리야의 행동을 보며, 그것도 한참 일하고 있는 순간에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 지 두렵고,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두렵습니다.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지 않으면 뒤 쳐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들 처럼 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모든 것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지나가 없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정로(正路), 바른 길로 가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니 세상에서 두려울 수 있는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담대함으로 비춰집니다. 과감한 결단과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과 그런 움직임을 가질까 의아해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었던 모세도 자신을 이어서 다음 세대를 이끌 사람으로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한 일이었죠. 모세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여호수아를 세울 때에 그에게 강조한 부분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두려워 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정로를 걸어가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형편을 보고 침체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세상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형편을 두려워 하는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부르심에 인생의 무게를 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사람들을 그렇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작은 사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들 속에서 조차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다음 세대 역시 우리 세대와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순례의 길을 가는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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