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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수 목사 | 자기실현의 영성 2020-11-21 16: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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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현재진행형의 삶을 산다. 일반적으로 자아(ego)와 자기(self)를 구별하여 자아는 주체적인 뜻으로 자기는 객체적인 뜻으로 이해한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원리는 이성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이데아에 대한 것이지만, 자기자신의 자기는 신체가 아닌 영혼이었고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데카르트는 어떤 사실을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의식하는 주체인 자기의 존재를 강조했지만, 의식하는 주체는 객체적 의미의 자기보다는 주체적 의미의 자아에 가깝다. 칸트는 인식하고 사고하는 주체로서 선험적 순수 자아와 인식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서 경험적 자아를 구별하였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자아와 자기를 구별하지 않고 자아의 개념이 자기를 포괄한다고 생각했다. 


타자성의 철학을 집대성한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전통적인 서양철학이 주목하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기성은 타자를 주체에 포섭하기 위해 동일자로 환원하는 전체성의 철학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레비나스는 ‘나’라는 동일자로 흡수할 수 없는 타자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지는 윤리적인 책임성이 나의 나 됨을 구성하는 주체성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인간에게는 존재 유지를 위해 나를 초월하는 ‘무한자’에게로 가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욕망이 있다. 레비나스에게 자아는 자신이 그 자신의 본질을 깨닫기도 전에 ‘거기에(there)’ 존재하는 타자의 피할 수 없는 부름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피조물이다. 인간의 본질이 존재하기도 전에 타자의 요청에 반응하게 되어 마침내 자아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나의 내면성은 타인을 경유해서만 확립된다고 말한다. 자기실현은 무한한 타자를 영원한 거기에 두고 그 부름과 요청에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무한한 타자로서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부르시고 영원한 안식으로 초대하시며 이웃 안에서 이웃에게 부르심의 요구에 합당한 책임을 갖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자아를 포기하고 자아를 상실함으로써 하나님에게서 오는 권능을 받게 된다. 자기실현은 자기를 무한한 신적 타자 곧 하나님에게 양도하는 실천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하고 이웃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순종의 영성을 실천할 때 자기실현을 이루게 된다. 자기실현의 바로미터(barometer)는 종교심이나 종교적 행동이 아닌 선한 신앙 양심이다. 모든 사람의 양심 속에는 무한한 타자가 자신을 이끌고 있음을 자각한다. 사람들은 이를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신앙 양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미래를 이끌고 현재를 주관하시며 과거를 돌아보게 하심을 확신한다. 욥은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하며 평생에 양심에 꺼림칙한 날이 없었음을 고백한다(욥 27:6).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으며(행 23:1)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다고 선포한다(행 24:16). 이 신앙 양심은 성령을 힘입어서 진실하고 참된 선한 자기실현을 증거한다(롬 9:1). 신앙 양심은 선하고 깨끗한 양심이다. 종교심이나 종교적 의식으로는 신앙 양심을 보존할 수 없다. 신앙 공동체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영생의 신앙을 고백할 때 신앙 양심이 이루어지고 증거된다. 이 신앙 양심을 버리면 신앙생활에서 파선을 당하게 되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인이 된다.
 

우상은 신앙 양심을 더럽힌다. 우상에 물들게 되면 양심에 낙인이 찍힌 거짓말쟁이가 되어 자신을 속이고 이웃을 속인다. 심지어 국민 모두를 속이기도 한다. 성공이 우상이 되고 돈이 우상이 되면 신앙 양심은 작용하지 못한다. 목사라고 해서 교회의 직분자라고 해서 교인이라고 해서 신앙의 양심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교회는 신앙 양심 없이 타인에게 자신을 신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여러 겹의 가면으로 위장한 페르소나(persona)의 신자들이 많다. 교회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장착한 이들이 목사가 되고 직분자가 된다. 이들이 사회에서 대통령이 되고 장군이 되고 위정자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 교회에서나 사회적으로 존경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리를 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법을 자행한다.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을 속이고 심지어 자신의 양심을 속인다. 이들은 신앙 양심에 거짓의 낙인을 찍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지 못하고 우상을 쫓아 사는 타락한 종교인들이다.
 

자기실현은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삶의 여정이다. 그리고 자기실현은 선한 신앙 양심을 실천하여 이루어가는 신앙의 훈련이다.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여 우상에 빠지지 말고 매일 주시는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요청에 응답하며 살 때 진정한 자기실현이 이루어진다. 선한 양심을 사회 법이 판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복시켜야 한다. 절대 거짓이 아니라고 미디어 앞에서 대국민 담화를 한 후에 법의 판단에 신앙 양심을 빼앗기고 구형을 받는 대통령 장로의 뒷모습은 그리스도인의 자기실현이 무엇인가 겸손하게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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