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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교수 |東에서 부는 바람 西에서 부는 바람·556 - 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 ⑪ 2018-11-30 21: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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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표적인 두 기업문화가 있다. 하나는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씨가 이루어 놓은 삼성문화와 다른 하나는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씨가 심어 놓은 현대문화다. 이병철씨와 정주영씨가 성격적으로 아주 대조적이기 때문에 이 두 기업문화도 아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병철씨는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햄릿형과 성격이 비슷한 점을 갖추고 있으며 정주영씨는 돈키호테형과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과 현대는 각각 창업자 성격을 닮은 특유의 기업문화를 통해 성공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햄릿형의 특징은 특정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결단을 하는데 많은 장애물의 출현가능한 과정들을 면밀하게 생각하고 분석하기를 여러번 반복하여 목표에 이르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확신이 될 때에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을 말한다. 반면 돈키호테형은 일단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목표를 세워 바로 행동에 옮긴다. 목표를 향한 과정에서 당하는 실패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 들인다. 생각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는 형이다.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는 이병철씨의 햄릿형 성격의 소산물이며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현대중공업은 정주영씨의 돈키호테형 성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양쪽이 모두 장단점을 갖고있다.

 

1993년 9월 1일 김영진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이로서 ‘벧엘 2세대’가 시작됐다. 김 목사는 김의환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나성한인교회 부목사로 있었다. 김상복 목사가 떠난 후 3년이 넘어서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한 것이다. 김영진 목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초대 김상복 목사와 대조적이다. 마치 이병철의 햄릿형과 정주영의 돈키호테 처럼 말이다. 우선 그는 김상복 목사를 중심으로 ‘벧엘 1세대’가 이루어 논 벧엘의 14년 전통을 바꾸려고 애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 그는 1995년 6월 11일 사임할 때까지 2년 8개월 간 몇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첫번째 개혁은 안수집사 제도의 도입이다. 김영진 목사는 한국장로교회가 안수집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벧엘교회도 이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당회는 벧엘교회 집사 가운데 안수집사 후보 20명을 선택, 이들은 1993년 12월 5일 교인총회에서 모두 인준됐다. 교인총회 토의 중 이 제도를 택하기 위해서는 집사관련 규약이 우선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김 목사는 사도행전의 성경적인 근거가 규약을 우선한다는 의견으로 안건을 처리했다. 이 때 인준 된 벧엘교회 최초 안수집사 가운데 많은 분들이 후에 장로로 피택되어 시무한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다음 해 총회에서는 안수집사 인준 절차가 채택되지 못했다. 그래서 벧엘에서의 규약에 없는 안수집사제도는 일회성으로 끝났다.

 

벧엘교회는 장로교 체제를 갖고 있으면서 독립교회를 유지하고 있다. 독립교회는 교회 체제에 있어서 한국 장로교 전통을 포함해서 어느 특정 장로교 체제에 꼭 속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을 감안해서 벧엘교회는 1980년 첫 헌법과 규약을 만들 때 독립교회로서의 독특한 집사제도를 채택했다. 벧엘교회 규약은 제7장 장로, 권사, 집사 조항에서 집사를 당회에서 추천, 총회에서 재석 과반수로 인준받으며 임기 3년 후 총회의 재신임을 받아 재시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수집사 제도가 없는 미국 장로교  집사제도와 한국 장로교 안수집사 제도를 절충하여 이 제도를 채택한 것이다. 김상복 목사는 이 제도가 성경적임을 강조했다.

 

김영진 목사 임기 중 또 하나의 특기 할 만한 사항은 예배형식의 변화다. 그 동안 수요 저녁 예배시간에 권사들이 돌아가면서 진행하던 성경봉독이 남자집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김 목사는 예배 후 교회 정문에서 교인들을 배웅할때 여자 교인들과는 악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많은 교인들에게 ‘뜻밖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김상복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관계 형성에서 큰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김상복 목사는 교인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악수하고 포옹을 했다. 어떤 교인들은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고 말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을 인용, 장로교 전통은 여자들이 강대상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여자와 아이를 사람 숫자로 계수하지 않았던 신약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가? 사도행전 1장 13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120명의 신도들이 기도할 때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도 함께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로마교회의 교인 명단을 보면 여자 성도들이 큰 역활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6.25 전쟁 전, 중학교 때 나갔던 서울 흑석동 한 교회는 예배당 가운데 가로 질러서 가림막이 쳐 있었다. 오른편은 여자 교인이 왼쪽편은 남자 교인이 가림막 사이로 따로 갈라 앉아 예배를 드렸다. 나는 그 이유를 오랫 동안 알지 못했다. 한 참 후에야 이것이 한국장로교 전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은 가림막을 하는 교회는 없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로교 전통을 고수하는 일은 어느 면에서 좋은 것 같이 보이지만 어떤 때는 세상은 변하는데 교회만 변하고 있지 않다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비성경적으로 교회가 변신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는 한에서는 교회는 시대적인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현상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본질을 잊거나 왜곡 할 때가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현상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것을 외면하면 교회로서 짠맛을 잃게된다고 생각한다.

 

허종욱 박사

버지니아 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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