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김세환목사 | 이제라도 2019-04-12 17:57:28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너무 늦었다고 체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접은 마음을 다시 펼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혁명적인 단어가 “이제라도”(even now)입니다. 이미 지나쳐버린 과거를 다시 소급하는 반성의 언어이기도 하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회복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순간 이 말을 읊조리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제라도” 돌아설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와 시몬 베드로를 별 개의 인물로 구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른 믿음이나 야심을 가졌던 것처럼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만나는 두 사람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죽도록 충성하다가, 막판에는 예수님을 죽도록 외면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 넘겼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무참하게 버려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처참하게 부인했습니다. 자신의 스승을 매몰차게 배신한 두 사람의 죄에 대해서 경중(輕重)을 물어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다 떠 넘기려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두 사람 모두 충분히 배신자입니다. 그런데 “이제라도”라는 물음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대(大) 사도”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영원한 배신자”로 낙인 찍은 것입니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베드로는 그렇다고 생각을 했고, 유다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고, 다른 한 사람은 영원히 그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주님께 “늦은 회개”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돌아오면 “언제라도” 회복시키시고 사용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집을 나간 딸 아이 때문에 늘 눈물로 기도하시던 권사님 내외 분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열 다섯 살 때 남자 친구를 잘못 사귀는 바람에 둘이서만 살겠다고 가출을 했습니다. 유독 공부를 잘하는 예쁜 아이였는데, 남자 아이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학교를 포기하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집을 나가자 모든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아이와도 불화가 심해져서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상황은 극도로 나빠져서 딸은 여러 술집을 전전하며 “스트리퍼” (Stripper) 일을 하며 생활을 했습니다. 항상 술과 담배에 쩔어 지냈습니다. 마약 때문에도 여러 번 감옥을 들락거렸습니다. 권사님 내외는 실종신고를 내고, 칠년 동안 딸 아이의 행방을 찾아다녔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딸 아이를 찾았는데, 뉴욕 근교의 한 작은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매춘도 했습니다. 딸 아이의 나이가 이미 22살이 되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실종이 아니라 가출로 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딸 아이가 성인이기 때문에 경찰도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권사님 내외가 딸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두 내외가 매일 새벽예배에 나와서 눈물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아이가 술과 약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딸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울면서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엄마, 이제라도 돌아갈 수 있나요?”, “이제라도 집으로 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흐느끼는 딸 아이에게 엄마도 솟구치는 눈물을 깨물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어디 있는지만 말해. 그러면 엄마가 지금 우리 딸 데리러 갈께.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너 있는 곳만 말해.” 온 몸으로 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권사님은 딸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주님께 “아이가 술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행여 제정신을 차리고 나면 또 다시 어디론가 잠적해 버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날 권사님 내외는 딸을 다시 얻었고, 딸도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라도”라는 말이 만들어낸 최고의 기적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수많은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묻혀 있습니다. 미친 폭주 열차처럼 죄악의 정점을 향해 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급기야 하나님은 저들에게 전쟁과 자연재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잿더미 위에서 그리고 메뚜기 재앙과 같은 지옥같은 천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연자실하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도 주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위로의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우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말씀을 통해서 최후의 반환점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이제라도”를 묻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도 “이제라도”를 묻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올 해 초, 우리 교회의 표어는 “거룩하게 살기”였습니다. 특별히 스티커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차에 붙이고, 늘 보면서 기도하고, 삶으로 옮기도록 노력할 것을 자주 말씀 드렸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권사님이 저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티커가 너무 후져서 안 달고 다녔는데, 지금 보니까 괜찮네요. 목사님, “이제라도” 달고 다니게 하나 있으면 주실래요?” 그렇게 오랫동안 광고를 했고, 스티커를 다른 종류로 두 번에 걸쳐 새로 뽑았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끝날 때가 다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차에 붙이시겠다고 몇 개 달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분께 드리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지만, “이제라도” 차에 다시겠다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아 한 말씀드렸습니다.


“권사님,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김세환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62481341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만우목사 | 고난주간 묵상 (2019-04-12 17:52:48)
다음글 : 허종욱교수 | 東에서 부는 바람 西에서 부는 바람·571 (2019-04-12 18: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