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김세환목사 | 거룩한 산 제물 2019-05-10 13:03:55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약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자기 몸을 스스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겠다는데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산제물이 될 만한 사람이냐?”입니다. 자고로 제물은 깨끗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관 상으로 볼 때 상처나 흠이 없어야 합니다. 제물로 받쳐지는 때도 적당한 시기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활발하고 생산적일 때 성별 되어 드려야만 합니다. 제물을 대하는 제사장의 태도나 규례도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로 제사를 재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과정 하나 하나가 까탈스러웠습니다. “제사장 보다는 목사가 훨씬 낫겠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제사의 규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격이나 인품 그리고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이 덕이 되지 않는데도 감정에 치우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는 것 보다는 일정기간 자숙과 준비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해 보입니다.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민사회 속에서 평판도 좋지 못한데다가 소금 보다도 더 짠 사람이었습니다. 그 많은 재물을 벌기 위해서 못할 짓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 나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공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사의 설교를 듣는 중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를 찾아와서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목사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그 분의 속 마음을 알 수도 없고, 그 분이 과연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할 만한 준비가 되었는지 검증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교회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할테니 목사에게 무조건 길을 터놓으라고 요구를 합니다. 결국, 목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이 사업가는 화가 치밀어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다른 교회를 찾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목사라면 이런 경험들을 여러번 해보았을 것입니다. “뜨거운 감자”같은 그런 분들을 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뿌리 칠 수도 없어 고민스러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 남부 플로리다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있었던 한인 총회에 참여했다가 한 후배 목사님의 고민을 밤새 들으며 “거룩한 산 제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섬기는 작은 이민교회 속에서 영어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한 장로님과의 갈등이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젊었을 때는 미국 예찬론자로 살았는데, 연세가 들수록 한인들이 그리워 결국 많은 한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한인 교회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당연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머지않아 교회 안에서 중직의 자리에 오르고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미국인 감리사나 감독과도 편하게 지내면서 금방 막강한 힘을 갖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교회에서 최고의 실권자가 되어 목사들 서너 명을 교체시키고, 자신의 인사도 감리사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그는 영어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예배 시간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자신을 받으시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한쪽의 말만 듣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정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의 고민을 들으면서 “자기 헌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처럼 허물 많고 간악한 존재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것이 가능한 말일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도 마땅히 거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거룩하신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할 만큼 거룩해진 제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저만 하더라도 “하나님께 나를 드린다” 고 서원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형편없이 망가진 저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 이런 모습은 아닐텐데”하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로 살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무거운 마음을 자주 갖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며, 또 거룩한 산 제물의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 교부 중에 대표적인 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돔”(John Chrysostom, c.349-407)은 “온전하지 못한 우리의 몸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눈으로 일체 불결한 것을 보지 않게 하라. 그러면 눈이 제물이 될 것이다. 혀로 일체 불결한 것을 말하지 않게 하라. 그러면 혀가 제물이 될 것이다. 손으로 일체 불법한 행위를 하지 않게 하라. 그러면 손은 온전히 드려지는 번제가 될 것이다”

 

신앙생활은 결국 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다듬고,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날마다 부족한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다잡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세환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71937311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만우목사 | 내 어머니, 네 어머니, 우리 어머니 (2019-05-10 12:47:35)
다음글 : 서영섭목사와 함께 하는 QT 35 (2019-05-13 14: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