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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6 - 주일 학교에서 얻은 신앙 ① 2019-04-19 1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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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1·4 후퇴 때까지 북한 공산치하에서 살았다.
 
아름다운 대동강이 평양의 한 가운데로 흐르기 때문에 그 절경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라 기억이 다 희미해졌지만 그 대동강 기슭에 높이 솟은 모란봉과 그 밑에 을밀대의 청류 벽 푸른 이끼를 스치며 구불 구불 흘러 내려가는 대동강 물은 기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을밀대를 마주보고 있는 능라도의 모든 풍경은 말로 형언할 수 없으리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수많은 시인들이 이곳을 시로 읊었던 것이고 또 화가들은 이 고장을 잊을 수 없어 화폭에 담았다. 이 대동강 북쪽이 성안이고 우리는 대동강 남쪽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때는 이 대동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 다녔다. 겨울이면 대동강이 아주 꽁꽁얼어 붙어서 그 얼음 위를 지치며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새삼스럽게 생각하니 눈에 선하고 그리워 진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대동강 다리까지는 한 10분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주일 학교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주일학교에 주일학교 예배가 본당에서 1학년 부터 5학년까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여자들은 오른쪽에, 남자들은 왼쪽에 따로 앉았고, 제일 앞자리부터 1학년 반, 다음에 2학년 반 이런 순서로 앉았으며 그 옆에는 반드시 그 반의 담임선생님께서 같이 드리고 분반 공부시간이 되면 각 반의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그날의 공과 공부를 배웠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말씀이 얼마나 재미있고 또 흥미가 있었는지 모른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그날 배운 것은 요절이 있어서 다음 주일에 올 때는 외워야 했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이 거의 외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꼭꼭 외웠고 때로는 선생님이 반 아이들 한테 기도를 시키면 꽁무니를 빼거나 못했는데 나에게 시키면 기뻐서 기도를 하곤 했다. 우리 선생님은 “너는 장차 네 이름처럼 될꺼야.” 하시며 칭찬해 주셨던 기억도 난다. 하여튼 우리 반 선생님이 얼마나 열심히 잘 가르치셨는지 선생님의 성함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선생님의 모습은 눈에 선하다. 키는 작은 편이고, 이마는 조금 나왔고, 머리는 옛날의 엄마들처럼 머리를 쪽진 것처럼 묶었고, 음성도 쟁쟁하시고 참 좋으신 선생님이셨다. 나에게 신앙을 심어주신 고마우신 선생님이셨다.
 
한번은 주일학교 공부시간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 하리라”(마 10:32-33)라는 말씀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며, 보호해주시며, 지켜주시며 하나님의 딸로 인정해 주시니 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참 감사하고 기쁘기 한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 주님께서 “나는 너를 조금도 알지 못하노라” 하시며 나를 부인 하신다면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일까?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어린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어떤지 알 수가 없지만 그때 북한에서는 초등학교가 5년, 중학교가 3년, 고등학교가 3년, 대학교가 5년 이런 학제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중학교로 진급하게 되었다. 그때 평양에서는 중앙청을 중심해서 거리가 제일 가까운 중학교가 제일여중, 제이 여중 이런 순서로 중학교 이름이 정해졌고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제사여중이었다. 제사 여중과 제삼 여중은 바로 마주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매사가 라이벌이었고, 이 두여자 중학교가 제일 컸다. 그래서 모두 이 두 여자중학교로 오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구역제도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오니 주일에도 학교에 가야만했다. 주일에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생들을 강당에모아놓고 ‘보고대회’라 해서 전교생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며 남한과 미국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중의 결석은 상관하지 않지만 주일에 결석하면 문제를 삼았다. 그러나 주일에 학교에 결석하고 교회에 간 학생들은 사상이 온전하지 못한 반동분자로 취급됐다.<계속>

 


강미리암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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