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이응도목사 | 신앙적 우상숭배? 2019-07-19 08:57:58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지난 주에 저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Greek Orthodox라는 교단 교회의 장례식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회당에 제일 먼저 들어서면서 양쪽 입구에 작은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 제단에는 예수님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이 제단에 예물이 놓이기도 하고 앞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한참 예식을 보면서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제단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중국인들의 가게에 가면 그들의 조상신들에게 번영과 안전을 비는 뚱뚱한 신이 배를 두드리면서 비스듬하게 누워있습니다. 그 앞에 늘 향이 피워져 있습니다. 중국인들만 그럴까요? 한국에도 한 때는 집집마다 ‘신줏단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라다보니 제사를 드린다거나 조상을 모신다거나 하는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강도사로 교회를 섬기던 시절에 한국의 전통적인 ‘신줏단지’라는 것을 접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가정이 갑자기 잘 보이지를 않아서 권사님들과 함께 심방을 갔었습니다. 알고 보니 친척들이 말하기를 자기 가정이 교회를 나가면 조상신이 노하셔서 온 집안에 재앙을 내린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 집 대청마루 한쪽 끝 선반 위에 항아리가 하나 있고, 숟가락이 꽂혀 있었습니다. 향을 피운 흔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안에서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면서 장손의 집에 있던 조상신을 이 집으로 옮겨놓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가 막혀서 그 신줏단지를 들었습니다. “강도사님, 큰일납니다. 왜 그러세요. 다치십니다.” 겁을 내면서 말리는 그분들을 뒤로하고 그 항아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만일 정말 조상신이 여기에 있다면 제가 다치겠지요. 만일 제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이건 가짜인 겁니다.”
 
아마도 젊은 혈기에 그랬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결국 저는 그 항아리를 그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다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사실... 아무리 그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분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인데... 제가 그때는 정말 젊었고, 겁 없고, 앞뒤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무례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종교가 뭔가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예수님이 제단에 드려졌고, 조상이 누워있고, 쌀이 항아리에 든 것은 다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할 처소를 구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기도도 비슷합니다. 자신들이 잘되고 자손들이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와 기도가 드려지는 제단은 신을 위한 제단일까요? 나를 위한 제단일까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제물을 드려서 나를 유익하게 하는 제단.... 나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제단입니다. 사실 이런 제단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마다 차고 또 넘칩니다.
 
종교와 신앙의 목적이 나를 위한 것일 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종교와 신앙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안전하고 평안하고 복을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가 변해야 할까요? 신이 변해야 할까요? 내가 움직여야 할까요? 신이 나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까요? 나의 기도로 신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 이런 신앙의 특정입니다. 내가 믿고 제단을 쌓는 신은 내 집을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켜야 합니다. 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나의 복을 빌어야 합니다. 신의 뜻대로 내가 변하기보다 나의 욕망대로 신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신앙입니다.
 
한 가지 더 유사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상징들은 스스로 힘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상징에 불과합니다. 다만 그들은 두려움과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에게 힘과 권위를 줍니다. 두려움과 욕망은 우상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힘이 있을까요? 신줏단지가 그렇게 힘이 있다면.... 저는 지금 정말 큰일을 만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힘이 있다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제단의 모든 보화가 약탈당했는데... 그 제물이 가는 곳에 재앙이 함께 임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징은 힘이 없습니다. 상징은 상징에 불과합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을 만날 때 영성을 가집니다. 사람의 영성이 상징에 전이(轉移)되는 것인데요, 우상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자기 성취와 만족이 신앙에 앞서지 않기를, 성공과 자랑이 복음에 앞서지 않기를, 두려움과 염려가 우리의 신앙의 동기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서 화목하게 하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곁을 든든히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응도 목사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담임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94346655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양규장로 | 왕자의 자리 (2019-07-19 08:54:16)
다음글 : 김장환 목사의 경건생활 365일 (133) (2019-07-19 0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