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17 - 제임스 메디슨 1 2019-07-19 09:06:44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제임스 메디슨 1

 

“헌법의 한마디 한마디는 권력과 자유 사이에 일어나는 질문에 결정을 준다”고 제임스 매디슨은 그의 대표적인 명언을 남겼고, 그만큼 헌법을 존중했다. 제임스 매디슨은 헌법이 만들어지고 비준되는 과정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권리 대장전의 첫 10개 항목 개정을 거의 다 주관하다시피 했다. 그는 5피트 4인치 키에 100파운드 몸무게로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작은 몸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격이 넓고, 큰 사람으로서 미국 정부를 세우고, 정부가 국민의 뜻을 대표하고, 그것들을 계속 진보하도록 만든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매디슨은 1808년 미국역사상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중에 있고, 두 나라 다 미국을 얕볼 때였다. 결국 미국은 아직 잘 준비되지 않았으나 영국과 전쟁(1812-1815년)에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전쟁은 양쪽이 다 무승부로 끝났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생존한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또한 미국은 그레이트 레이크 지역에서 해군의 승리로 오하이오 강 북부과 미시시피 강 서부지역을 확실하게 확보하게 되었다. 매디슨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떠날 때 쯤 미국은 세계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나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제임스 매디슨은 1751년 3월 16일 버지니아 포트 콘웨이에 몬트펠리어에 있는 외조부모 집에서 태어났다. 매디슨은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로서 점점더 영국에 저항이 왕성해갈 때, 홈스쿨로 역사와 정부에 대한 공부를 마쳤고, 후에 뉴져지 대학(후에 프린스턴 대학이 됨)에서 법을 공부했다. 그는 목사와 변호사를 두고 결정의 기로에서 망설였지만, 마침 미국이 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목회자의 길은 뒷자리로 미루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 뒤, 건강문제로 집에 돌아와 1년을 지냈다. 역사가들은 매디슨이 심박동이 빨라지는 증세(하이포콘드리악이라는 병)를 호소했다 한다. 그는 병석에서 회복하는 동안 많은 독서를 했고, 독립을 선호하는 운동과 공화당에 해당하는 정부의 한 폼을 만들었고, 1774년 즈음엔 버지니아 지역 방어조직의 안전 위원회에 위촉되었다.


1776년 매디슨은 버지니아 주 컨벤션(협의회)의 일원이 되어 주 헌법을 만들었고, 그는 버지니아주 대표인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종교자유를 증진하기 위해서 힘썼다. 1779년 매디슨은 대륙 국회에 29세로 최연소 국회위원이 되었다. 처음엔 말이 없는 듯 매사에 삼가하는 듯하던 매디슨은 토론에 참여하여 점점 더 효과적인 법조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783년 그는 고향 몬트펠리어로 돌아왔으나 그의 약혼녀에게 파혼당하고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그는 다시 1784년 버지니아의 사법부에 당선되었다. 그가 사법부에 있을때 그는 토마스의 종교자유에 대한 규칙을 강력하게 지원했고, 그것은 1786년 법으로 통과됐다. 한편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사이에 상거래 이슈가 생겼을 때, 매디슨은 모든 다른 주들의 대표들을 초청하였는데, 그중에 5개 주에서만 대표들이 참여했고, 이때부터 매디슨과 뉴욕에서 온 대표 알렉산더 해밀턴과는 후에 각각 반대측 정치 리더들과 한 팀이 되기 전까지는 매우 가까운 동지였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Type the text here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23843164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장환 목사의 경건생활 365일 (133) (2019-07-19 09:03:10)
다음글 : 안희환목사 | 목사님,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2019-07-19 10:4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