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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14 | 6·25 전쟁 ⑧ 2019-06-14 08: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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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넘어서

이제는 남한 땅 안전지대이다. 1월이면 겨울 중에 제일 추운 때이다. 이 추운 겨울에 평양에서부터 어린 동생들과 같이 걸어서 여기 안전지대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야말로 사선을 넘어서 온 것이다. 저녁이면 빈 집에 들어가 종일 굶었던 창자를 주먹밥으로 채웠고, 피곤한 나머지 쓰러져 자고, 아침이면 또 일어나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곳마다 동네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불안했던 것은 안전지대인 줄로 알았었는데 멀리서 “쿵~ 쿵~”하고 대포소리가 들려왔고, 밤이면 빨간 신호탄들을 “씽~”하고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것이었다. 우리의 뒤를 중공군들이 뒤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바쁜 마음에 우리에게 걸음걸이를 채근하셨고 그런 날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걸었다. 부지런히 걷고, 바삐 걷던 그 다음 날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던 생각이 난다.

우리의 옷에는 온통 이가 생겨 근질근질했으나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여름같으면 벗어 집어 던지겠지만 추운 겨울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더러웠고 불쾌했다. 거지도 이런 거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나만, 우리 가족만 겪어야 한다면 도저히 겪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전쟁의 고난을 우리 한국민족 온 전체가 과연 겪어야만 했던 일인가?


앞에서도 썼지만 고향 평양에서 밤에 자려고 드러누웠다가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뛰쳐나와 남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밤에 아마도 한 70-80리는 내려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벌써 이 고장 사람들은 다 남한으로 피난가고 모두 빈집뿐이었다. 이 고장만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 서울까지 내려가면서 본 모든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남한으로 피난가고 집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왜 우리 한민족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했는가?

북한의 공산체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모든 시민들이 이 6·25 전쟁으로 인해 자유를 찾아 모두 남한으로 피난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미군과 UN군이 죽은 숫자를 제외하고 남한 시민과 국군들이 죽은 숫자가 5십 9만 5천명 가량된다. 여기에 부상자들의 수를 더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될 것이다. 이 6·25 전쟁으로 나의 삼촌은 파편에 코가 날아갔다.

 

우리 삼촌은 장 생기신 분이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제일 중앙에 있는 코가 없어지고 구멍만 뚫려 있으니 보기에도 흉해 얼굴에 마스크를 해야만 했다. 마스크를 해도 보기가 흉했다. 호흡하기에도 얼마나 불편했을까? 젊었던 나의 삼촌은 얼마나 비관이 컸을까? 그러면 이러한 전쟁의 참혹함을 죽은 자들과 부상자들만 당한 것인가?


아니다. 평양에서부터 부산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들과 집과 전토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빈 몸으로 오로지 자유와 생존을 위해 죽을 고생을 겪으며 전부 남한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나와 나의 온 가족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하한 것도, 오로지 자유를 찾아서 살기 위해서였다. 온 백성들이 이 자유를 찾아 남하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 6·25 전쟁은 무엇인가? 북한의 침략이었다. 이 사실은 내가 평양에서부터 남하하는데까지 눈으로 보고 겪은 사실이다. 침략으로 인해 이 어마 어마한 생명이 희생 되었고 우리 민족이 참혹하고 비통한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 날은 안전한가? 아니다. 저 천안함 사건, 이 사실이 바로 침략의 재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결코 침략을 다시 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고국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항상 우리들의 시선과 마음은 조국 대한 민국을 향하고 있다. 나와 남편 전 목사는 나의 조국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 재미동포를은 모두 하루 속히 이러한 침략이 없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때를 회상하니 감정이 되살아나 이런 말들을 기록하게 된다.

 

우리들은 계속 걸어서 서울 장안까지 들어왔다.

 


강미리암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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