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24 2019-09-06 16:16:06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 (1825 -1829) 2

 

존 퀸시 아담스는 1767년 7월 11일 브레인트리 매사추세츠에서 2대 대통령(존 아담스가 대통령 되기 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영국태생으로 1632년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아담스의 조상 중 한사람은 메이 플라워호 순례자들중 한 사람인 존 알덴의 손녀와 결혼했고, 헨리 와드워즈 롱펠로우가 쓴 시 “오랫동안 남을 구혼”의 주인공들이다. 퀸시의 어머니, 아비가일도 또한 깊은 역사적인 뿌리가 있는 사람이다. 아비가일의 친정인 스미스가도 1633년 미국에 도착했고, 뉴잉글랜드 초기 개척 역사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존 아담스는 1764년 아비가일 스미스와 결혼하였다. 아비가일 아담스는 집에서 교육 받았지만 많은 독서로 학문이 넓었고, 노쟁가이고, 작가였고,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남긴 200여 통의 편지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이상에 크게 공헌했음을 말해준다.


존 아담스가 변호사로 일하던 도시 식민지 보스턴은 1775년에 미국 미국혁명이 일어나던 해를 기점으로 점점 영국에 반항적이었고, 존 퀸시 아담스는 당시 7세였다. 독립전쟁은 퀸시 아담스의 삶에도 갑작스러 변화를 불러왔다. 그가 다니던 브레인트리 마을 학교는 학교장이 대륙 군대에 복무하러 감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대륙 국회에 위임받아 3년간 근무하러 감으로 시작됐다. 그때에 존 아담스는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을 쓰는 위원회에 속하여 제퍼슨을 도왔다. 전쟁이 그가 사는 지역 근처까지 왔었을 때, 그는 인근 언덕 위에서 ‘벙커 힐’ 전투를 실제로 목격했다.


1778년 퀸시 아담스가 11세일때 그의 아버지 존 아담스가 프랑스에 미국 대사로 임명되었고 그는 함께 파리로 갔다. 아버지 아담스가 다시 유럽으로 외교관으로 돌아올 때도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갔고, 퀸시 아담스는 아직 14세도 안되었을 때 홀랜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같은 해에 첫번째 러시아에 파견된 프란시스 데이나 미국대사의 요청으로 그의 비서가 되었고, 다음 14개월 동안 퀸시 아담스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러시에서 거주했다.


1785년 미국에 돌아왔을 때 21세의 주니어 외교관으로의 그의 눈부신 활동은 퀸시 아담스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1787년 하버드 졸업생 중에 2등으로 졸업하게 되고, 그의 학년 동급생들 중에 가장 뛰어난 공중 웅변가로 졸업연설을 했다. 그는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나, 매일 반복되는 변호사의 일상에 싫증을 내게 되고, 뉴인글랜드 신문에 정치적인 주제들을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의 문학과 배움에 대한 사랑 재질을 물려받아 그의 대부분의 시간은 독서와 책 수집에 헌신했다.


1794년 어린 존 퀸시 아담스는 네덜란드 대사로 임명되었다. 1795년 아담스는 다시 영국으로 보내져 미국과 영국사이에 고조되어가는 긴장 완화를 위해서 제이 조약(Jay’s Treaty)을 성사시켰고, 그가 영국에 있는 동안 미국 영사였던 영국인 조슈아 존슨의 딸 루이자 존슨을 만났고 긴 약혼 기간 뒤 1797년 런던에서 결혼했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81974330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장환 목사의 경건생활 365일 (140) (2019-09-06 16:13:11)
다음글 : 안희환목사 | 미국 간 아들도 성경 읽기를 체크하다 (2019-09-06 1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