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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1 - “내리 내리 갚아라” 2019-08-02 07: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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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산위 부산 평양교회에서 임종호 전도사님은 전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셨다. 전도사님께서는 말씀을 잘 풀이하셔서 어느 장로님께서는 전도사님의 성경 가르치신 원고를 전부 수집하여 책으로 출판해 드린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 장로님께서 전도사님보다 먼저 소천하셨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도사님은 부산에 오셔서도 교회와 신학교 일로 늘 바쁘신 가운데 지냈다.


내가 부산 평양교회에 다닐때 전도사님과 한번도 가까이 지낸적도 없고 또 나의 모든 사정을 이야기한 적도 없었다. 워낙 교인수도 많았고 학생들도 많았지만 전도사님은 성경도 가르치시며 또 신학교의 일로 늘 바쁘셨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전도사님께서 “미리암아, 너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집에 가거라.”고 하셨다. 종종 저녁예배때 내가 반주를 할 때도 있었는데, 나는 우리 집이 너무 멀고 밤길이 무서울까봐 그러시는 줄 알았다. 아무튼 그날 아버지께 오늘 밤은 전도사님 댁에서 자고 간다고 말씀드렸다.


교회 바로 밑에 작은 방을 한 칸 들여 전도사님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전도사님과 같이 그 사택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니 거기에 작은 어항 하나에 금붕어가 한 서너마리 있었다. 전도사님이 방에 들어 가셔서 이 어항 앞에 서시자 금붕어들이 전부 전도사님 앞으로 모였다. 전도사님께서 “미리암아, 이것 좀 봐라. 내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이렇게 나를 반겨 준단다.”하시며 먹이를 위로 솔솔 뿌려주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순진하게 보였는지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전도사님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위만 향하시고 사시는 분이라 그 얼굴에는 항상 순결하심이 풍겼다. 전도사님께서 나를 앉으라고 하시더니 “미리암아, 너 등록금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지? 이번 너의 등록금을 내가 내줄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때를 회상하니 또 다시 나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전도사님은 금전적으로 그리 넉넉한 분도 아니었는데 나는 깜짝 놀랐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그저 집이 멀어서 자고 가라는 줄로 알았었다. 순간 너무 감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전도사님, 내가 이 다음에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뿐이었고 그 감사함에 하염없이 울었다.

“내리 내리 갚아라”


이때 전도사님께서는 “미리암아, 갚아라. 그런데 이런 것은 나에게 갚는 것이 아니야. 내리 내리 갚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내 마음 비에 깊이 새겨졌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전부 다 들어있다. 나의 신앙에 지침이 된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네 딸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사랑하는 딸들의 마음 비에도 깊이 새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피츠버그 연합장로교회를 은퇴할 때 어느 구역에서 우리 내외를 송별 저녁식사에 초대해 식당에서 잘 대접해 주었다. 나는 목회할 때 교회 일을 열심히 했다. 나의 일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결혼을 했으니 모든 일을 기뻐서 했다. 그러나 간증을 한다든지 성경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 목사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떠나가면서 나의 마음 비에 “내리 내리 갚아라”라는 말씀을 간증하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 구역원들에게 우리 가정은 1·4후퇴 때 평양에서 부산까지 피난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내가 대학은 입학 되었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절망 가운데 있을때 임종호 전도사님께서 어떻게 나의 형편을 아시고 나에게 일학년 첫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주시고, 그때 나는 감격해 울면서 내가 장차 꼭 갚아드리겠다고 했더니 “이런 것은 나에게 갚는 것이 아니고 내리 내리 값아라.”라고 말씀 했다고 간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인 중에 박영준 교수(현직 미국대학교 교수)가 임종호 전도사님의 친척이 된다는 것이다. 임종호 전도사님이 박영준 교수 어머님의 고모가 되신다. 그래서 박영준 교수님은 어머님을 따라서 임종호 전도사님을 고모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하시며 자기가 존경 하는 고모 할머니시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너무 너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임종호 전도사님의 관한 자료와 사진을 박영준 교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더 깊이 감명 받으며 기뻐했다.


이 대학의 첫 등록금이 내 인생을 열어준 것이다. 임종호 전도사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모두가 나의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섭리요. 나는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을때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 모두 이뤄주신 것이다.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뿐이다.

 

 


강미리암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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