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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교수 | 東에서 부는 바람 西에서 부는 바람·590 2019-11-08 1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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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 44

시련 후 더 큰 은혜가 옵니다

 

이제 ‘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를 마감한다. 1979년 봄 몇몇 가족으로 시작한 벧엘교회는 40년 후인 지금 2천여 명의 식구들이 되었다. 1988년 1월 28에이커 부지에 4만 스퀘어 피트 본당 건물을 봉헌했다. 벧엘식구들이 오랫동안 기도했던 다목적관이 10년 후 현실화됐다. 체육관 겸 친교실, 영어권 및 청년 예배실, 교육관, 주일학교 교실 등을 갖춘 5만 스퀘어 피트 ‘프로미스 센터’를 준공, 2019년 6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서 초대 김상복 목사 그리고 4대 이순근 목사를 강사로 봉헌 예배를 드렸다. 그동안 일곱분의 담임목사를 비롯해서 여러 목회자들을 보내주셔서 벧엘 식구들을 영적으로 성장하게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벧엘 식구들은 벧엘 공동체를 통해 함께 예배드리고, 교육받고, 선교하며 서로 믿음안에서 교제하는 영적인 축복을 누려왔다. 벧엘 식구들이 서로 알고 사랑하게된 연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며 섭리다.

 

그러나 지난 40년이 늘 화평과 기쁨만이 연속되는 장미빛 세월만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서로 갈등도 반목도 불평도 있었다. 짧은 시련, 긴 시련 등이 이어지기도 했다. 시련이 올 때마다 하나님에게 기도로 매달렸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갈 길을 열어주셨다. 더 은혜롭고 축복된 길이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시련 후 더 큰 은혜가 옵니다.”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시련은 은혜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벧엘 공동체와 벧엘 식구들에게 많은 시련을 통해 훨씬 넘치는 은혜를 베푸셨다. 시련을 당할 당시에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었으나 세월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시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이 연단을 통해 더 큰 믿음을 허락하셨으며 더 큰 은혜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하셨다. 우리는 과거 40년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밝히 알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며 또한 축복이다. 나는 벧엘의 40년 미래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런지 모르지만 과거처럼 시련을 통한 영적 훈련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교회도 사람이 모인 사회 조직이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일반 조직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일반 사회조직은 기계적인 조직에 비해 교회는 유기적인 조직이 그 특징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살아있는 몸의 각 부분들이며 이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몸의 각 부분 부분들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 지체가 시련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시련을 당하고 한 지체가 은혜를 받으면 모든 지체가 은혜를 받는다. 유기체의 구성체들은 서로가 서로에 의존되어 있다.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기체의 머리다. 모든 몸의 부분들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움직인다. 지체의 어느 부분이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 머리이신 예수님도 같은 아픔을 당하시리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며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고백하는 벧엘식구들에게는 또한 “시련 후 더 큰 은혜가 옵니다.”라는 고백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럿이라.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한다. 하면 이런 이유로 그것이 몸에 속하지 아니하느냐? 만일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한다. 하면 이런 이유로 그것이 몸에 속하지 아니하느냐?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냐?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곧 그것들 각각을 몸 안에 두셨느니라. 만일 그것들이 다 한 지체라면 몸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이제 그것들이 많은 지체이나 그럼에도 오직 한 몸이라. 눈이 손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하지 못하며 또 머리가 발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하지 못하리라.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그 지체들이 더욱 더 필요하고 또한 우리가 덜 귀한 것으로 여기는 몸의 그 지체들 곧 이것들에게 우리가 귀한 것을 더 풍성히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들은 아름다운 것을 더 풍성히 얻나니 우리의 아름다운 부분들은 부족한 것이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몸을 다 같이 고르게 하사 부족한 그 부분에게 더욱 귀한 것을 풍성히 주셨으니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그것과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존귀를 얻으면 모든 지체가 그것과 함께 기뻐하느니라.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고전 12:12-27)

 

 

허종욱 박사

버지니아워싱턴대학 교수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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