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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38 2019-12-13 1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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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 (James Polk) 1

 

제임스 포크는 취임연설에서 그의 행정부의 4대 경제적, 지리적 목표를 발표했고 재임기간 동안 그 목표들을 다 성취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직위에 있으나,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어느 대통령보다도 가장 확장된 넓은 영토의 유지 감독과 경제 안정 등 그 성취만 해도 그는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꼽혀야 하겠지만, 오히려 논쟁이 거듭되는 전쟁과 지역적인 분열이 그의 성공을 덮어버렸다.


그는 처음부터 한 번만 대통령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도 지켰다. 그는 여당인 민주당 내에 당파들을 하나로 만들고, 국가 전체를 진정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어도 양당 리더들 간의 차이점을 넘어서 다리를 놓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에서 그러했다. 제임스 포크는 지치고 낙담한 상태에서 그의 임기가 다하기 3개월 전에 53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제임스 K. 포크는 1795년 11월 2일 노스 캐롤라이나의 파인빌에서 사무엘과 제인 포크 사이의 10남매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농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806년 테네시 주 콜럼비아 타운으로 이사했다. 포크의 어머니 제인 녹스는 스코트랜드의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존 녹스의 증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약한 위장으로 고생하던 포크는 17세에 담석증으로 수술을 했는데, 마취한 상태에서도 정신이 말짱하여 옆에 그의 아버지 손을 잡고 힘든 수술을 마쳤고, 수술 후 그의 건강은 나아졌다.


그의 공식적인 교육은 교회에서 시작됐다. 그는 겨우 읽고 쓰는 것을 배운 뒤, 매우 빨리 진급하여 테네시 머프리스보로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영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에 탁월하여,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입학시험을 치렀을 때, 점수가 2학년으로 월반할 수 있을 정도였고, 1818년 22세에 수학과 고전 전공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다시 그의 건강이 나빠졌으나 여러 달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포크는 법률을 공부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펠릭스 그룬디 변호사 밑에서 계속 법률 공부를 했다. 그룬디에게서 포크는 정치에 눈을 떴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토마스 제퍼슨의 원리 원칙들을 깊이 존경했다. 그는 또한 테네시안들과 그 친구들이 존경하는 앤드류 잭슨의 숭배자였다.


포크의 정치 입문은 그룬디 변호사가 그를 테네시 국회 주총회의 서기로 추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820년 25세에 테네시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그는 자기 사무실을 경영하기도 했으나, 경제 공황이 일어나면서 그는 테네시주 국회 서기직을 내려놓고, 정치에 좀더 깊이 개입했다. 사람들은 그의 작은 키를 빗대어 농담겸 그를 “그루터기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렀다. 그즈음 포크는 머프리스보로 부유한 가정의 사라 차일드레스를 만나, 1824년 새해 첫날 뉴욕에서 결혼했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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