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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목사 | 단순함의 행복 2019-12-13 11: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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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결산하는 연말임에도, 행복함보다 근심과 염려의 빛이 더 짙은 것을 봅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밤 늦도록 열심히 수고하고 땀흘렸는데, 정작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목도합니다.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와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먼저 답을 정하지 못한 탓입니다. 행복에 대한 질문은, 사람의 ‘영혼의 행복’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혼의 만족 없이는 결코 행복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본질이 육체의 껍질이 아니라, 영혼의 모습에 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복을 구하는 기도의 정형입니다. 그는 참된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참된 행복을 구하는 그의 소망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복에 복을 더하시고, 지경을 넓혀주시고 등으로 시작된 그의 기도는 결국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영혼의 만족과 평안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종착점이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의 복은 참된 복입니다. 그는 행복을 알고 누린 사람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먼저 영혼의 만족과 감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영혼의 만족을 가장 선명한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생의 갈 길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그의 뜻과 길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쉽고 단순합니다. 영적으로 잘 되는 길, 주님의 몸된 교회에 유익함이 되는 길,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쓰임받는 길, 한마디로 은혜의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전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앙이 아닌 철저하게 자기유익에 매몰된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신의 소견에 하나님을 맞추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답을 미리 정해둡니다. ‘교회는 이러해야 하고, 목사는 이러해야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님도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내가 하나님 대접(?)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질서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결과 삶의 행복은 고사하고, 온통 원망과 불평으로 점철된 억울한 인생이 되었음을 봅니다. 얼굴과 말과 행동에 그것이 나타납니다. 최고의 권위자를 불신하고 저항하는 삶의 태도가, 인생에게 주신 삶의 질서에 대해서도 전혀 만족과 감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에 항복하지 못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대도시 수천 명 교회에서 예배드리던 분이, 이곳 작은 도시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만족하지를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몸은 이곳으로 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대도시 교회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만사가 비교대상이 됩니다. 전화기가 뜨거울 때까지 붙잡고 떠나온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에 열심입니다. 결국 훨씬 더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는 복된 자리를 버리고, 물위의 부초같은 신앙인이 되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지 못하면 인생은 생물학적 연륜에 상관없이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더 좋은 부모를 만나 상처없이 자랐더라면, 만약에 좀 더 좋은 남편을 만났더라면, 더 좋은 아내, 더 귀한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하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마저 자신의 생각으로 조작하려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바울같이 그런 생각들을 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믿음 탓입니다. 큰 믿음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정말 너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면, 아들까지 내어 주시며 너를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이 왜 그것을 준비하고 예비하시지 않았겠느냐?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그리고 은혜에 대해 믿고 구하는 이에게 허락되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을 인정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이 될 때, 영혼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별, 외모, 성품, 인종, 국적, 수명 등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그의 선하신 뜻 안에서 그가 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정해주신 것을 거역하는 곳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결혼의 상대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을수록 큰 손해가 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돌리시는 그 삶의 수레바퀴를 인정하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억울한 것도, 연약한 것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정리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 열매가 영혼의 만족과 감사입니다.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공간이 믿음과 은혜로 채워지지 못하면 인생의 행복도 요원한 일이 됩니다. 삶이 염려로 가득합니다. 염려는 영혼의 평안을 가르고 쪼개어 버립니다. 사단은 염려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이리저리 찢어 놓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단이 이리저리 칼질하며 찢어내는 그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서 전심으로 주를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의지를 작동하며, 감정을 풍성하게, 말씀에 대한 앎의 지식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바울처럼 자신속에 자신을 대신하여 악한 죄의 법과 전투하는 성령을 응원하게 되고 격려함을 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향해 명령합니다.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찬송해라, 내 영혼아 하나님만을 바라라. 찢기고 나뉘어진 마음을 사로잡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더욱 집중할 것을 명령하며, 자신의 영혼과 삶을 곧추세우는 과정입니다.


복잡한 세상일수록 놀랍도록 슈퍼 단순(?)해야 합니다. 복잡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사시대 말기현상처럼 오늘날 온갖 양상의 혼합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봅니다. 종교적 껍데기만 이리저리 모양내고 흉내내려다보면, 분주하기는 한데 영혼의 만족과 감사, 행복이 부재합니다. 정작 필요한 말씀과 순종, 예배와 은혜 앞에는 인색합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될 가련한 영혼의 상태는 지나가고, 외려 자기 소견을 기반으로 하는 사상들만 풍성한 것을 봅니다. 결국 사람이 스스로의 소견으로 만들어낸 행복은 온전하지 못함을 고백하게 할 따름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성경은 우리더러 행복자라고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의 만족을 구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영혼이 은혜와 평강으로 붙들리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슈퍼 단순해져야 합니다. 90세, 100세를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삶의 질곡같은 어려움에도 영혼의 만족과 감사를 누리고 전하며, 인생의 연한이 다할 즈음에는 사랑하는 남은 이들에게 ‘주 안에서 아름다운 소풍 마치고 나 이제 본향으로 돌아가노라’ 그렇게 기쁨으로 인사할 수 있는 성도라면, 그는 참 행복자일 것입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Little Rock, 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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