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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6 2019-09-06 16: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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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 취득

 

어린 전 목사의 배꼽에서는 고름이 나오기 때문에 자주 거즈를 갈아줘야 하는데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 갈기도 했다. 그런데 상해로 이사 온 첫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웠을 때, 하루는 거즈를 바꾸려고 배꼽에서 거즈를 들춰 보았더니 고름이 묻지 않고 거즈가 깨끗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했더니 이제는 병이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도 이것은 기적이라고 하며 기뻐했다. 온 집안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먼 친척들도 전 목사는 거반 죽은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인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통해 그는 어렸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Calling)을 받은 것이다. 어린 전 목사는 4년 후에 복학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는 열심히 공부해 자기 반에서 항상 최고 점수를 받았다.

 

세월은 흘러 8.15 해방을 맞이해 한국 의주로 나왔다. 그러나 공산치하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달으신 그의 아버님께서는 1946년 3월에 온 가족을 거느리고 월남하셨다. 그래서 어린 전 목사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해 우등생이 되었고 또 반장을 지냈다. 그리고 자기는 장차 신학을 공부할 것이기 때문에 서울 고등학교시절부터 영어로 된 신학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그 당시 별명이 ‘목사’였다고 한다.


한경직 목사님의 조언

전 목사는 서울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어 대학을 지망하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하나님 앞에 서약한 기도가 생각났다. 자기는 앞으로 신학을 공부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가서 의논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미국에서는 먼저 대학을 졸업하고 그 후에 신학교에 갈 수 있는데 자네도 먼저 일반대학에 가서 영문과나 철학과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에 지망했는데 석차 6등으로 입학이 됐다. 앞의 5명은 전부 여학생이었다. 그는 영문과에서는 필수과목만 하고 선택과목은 전부 종교학과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

 

당시에 신사훈 목사님이 종교학과 과장이었는데 영문과 학생이 와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신박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식도 신사훈 목사님께서 주례를 해주셨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 취득

후에 결혼하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신사훈 목사님(박사) 밑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계속 신사훈 박사님과 접촉하면서 신학연구에 몰두했다.

 

전 목사는 성서대학(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학장 되시는 강태국 목사님(박사)께서 시무하시던 한국성서교회에 출석했다. 나도 같이 성서교회에 출석했는데 나는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며 전 목사와 같이 중, 고등부를 열심히 인도해 중, 고등부가 크게 부흥됐다. 그는 또한 교회에서 선교사들이 설교할 때 통역을 맡아 했고, 대학생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쳤다.  <계속>

 


강미리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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