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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도목사 | 사회적 거리 두기 2020-03-21 05: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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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햇볕,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따뜻한 봄바람,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 가지마다 움트는 꽃잎들...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온 봄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경험으로 이 봄을 지납니다. 우리는 코로나 19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이제까지 사회 일반에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은 질병이 한 지역, 한 국가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범유행병(Pandemic)이 될 때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외에도 ‘자기 차단’, ‘자발적 격리’ 및 ‘역격리’ 등이 감염된 사람과 건강한 사람 사이에 물리적 근접을 제한하려는 방법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고 또는 학교 휴교, 대중교통 운행 중지 및 대규모 회합이나 공공장소 접근 제한을 포함하는데, 가장 강조되는 것은 역시 각 개인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타인과 나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거리’(distance)라는 말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과의 거리’라는 말은 제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일정한 ‘거리감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거리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보이지 않는 거리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과 우리들과의 거리가 있고,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복음에 대해 느끼는 거리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거리에 대해 각각 다른 감각과 의미를 두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요즘 강조되는 사회적 거리는 대부분 물리적인 거리를 말합니다. 한 2m 정도... 서로의 호흡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정도의 실질적인 거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의 거리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관계에서의 거리가 있습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자주 변합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관계와 그 거리가 다를 수 있고, 거리에 대한 각자의 표현의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도 있습니다. 같은 지역과 나라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지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거리도 있습니다. 최근에 어느 기자가 이런 글을 기고했더군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혹시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보지 않고 만나지 않으면, 몸이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까이 있고, 함께 있어도 우리의 마음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마음의 거리는 저 멀리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음의 거리를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여전히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이미 하늘과 땅의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만큼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의 거리가 생겼고, 예수님은 십자가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도망치고 숨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마음의 거리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능력도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다시 그들을 찾아오셨고, 관계와 마음의 거리를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는 실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거리이며, 죄인과 구속주의 거리입니다. 그 거리는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고, 극복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주 귀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 선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거리가 0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언하시고 가르쳐주신 한 단어가 무엇일까요?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저 멀리 하늘에, 저 우주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내 안에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와 함께하십니다.

 

사람은 범죄하고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거리를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용서하고 사랑하며 우리를 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복음이요, 십자가는 우리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복음으로 받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으로 복음과의 거리를 극복했고, 예수님에게 복음을 들은 제자들은 결국 성령의 임재와 변화로 복음과의 거리를 넘어섰습니다. 복음을 외면했던 사도 바울은 결국 자신 앞에 놓인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 길이 2000년을 지나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한 걸음 십자가 위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을 때 복음은 내 마음이 되고 내 삶이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 시대입니다. 복음과의 거리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삶이 복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음과의 거리를 넘어선 성도들의 삶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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