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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식 목사 | 현대인을 위한 천로역정 1 2020-03-28 10: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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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괴로운 인생], 1953년 파수꾼사 발행

 
사라진 첫 시집 『괴로운 인생』
                                                             
소암 심군식 목사님이 하늘 본향으로 가신지도 20년이 지난다. 오래전 10주기 기념 때 소암의 문학정신을 평론으로 기린바 있다. 이어서 본고는 심 목사님을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첫 시집, 「괴로운 인생」(파수꾼사 1953)에 한정하여 그의 초기 시심과 기독교적 정서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1. 첫 시집 「괴로운 인생」에 나타난 묵시문학의 서곡
첫 시집엔 전체 38편의 습작기 시를 싣고 있다. 시집의 구성은 제 1부, 삶과 죽음으로부터 시상을 모았으며 괴로운 순례자로서 숨 가쁘게 세상 여행을 출발한다. 제2부에선 고교 시인의 감성이 풍기는 풋풋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심군식은 괴로워했다. 그것도 고교시절의 정점인 고3 때 펴낸 시선에서 숨김없이 표현된다. 무엇이 그를 그리도 괴롭게 했을까? 그의 독서세계를 미루어 짐작건대, 윤동주의 서시에서 영향 받음직한 잎새와 바람의 괜스런 괴로움,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순례자에게 닥치는 유혹과 고통, 단테의 신곡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심판과 지옥불, 앙드레 지드의 고난스런 좁은 문 또한 열악하고 부조리한 세상현실 등... 그렇다면 심군식은 고교 때 '기독교문학'의 서곡(입문)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일까? 첫 시집의 서문 '일러두기'를 읽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데도 불행한 운명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태어난 나는 외로이 고민하며 비난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의 보따리를 등에 지고 무거운 발을 옮겨 터벅터벅 하염없는 희망 아래 쓸쓸히도 걸어가노라니 생의 고통에 지친 피곤한 몸이라 가다가다 드디어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천로역정을 읽기 시작하는 것 같은 감정이입이다.  
피곤한 나의 육체가 쓰러져 정신없이 당황할 때 나의 머리에는 이상한 느낌(환상)이 떠올랐습니다. 그 느낌은 내가 평소에 상상해 본 일이 없는 정말 괴로움에서 나를 건져내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이 느낌을 본 후 펜을 들어 적었습니다. 아 그러나 이상하지요! 이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음률이 맞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본래 천로역정은 우화형식이 가미된 대화체로 엮어진 소설이다. 그리스도인이 멸망을 앞둔 장망성(지상)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향하여 순례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좁은 문, 하늘나라, 진리, 위험, 낙심, 허영의 도시, 타락, 신기한 약속, 천국열쇠... 등. 존 번연은 비밀집회 혐의로 붙들려 12년간 옥중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천로역정은 그때 고통 중에 탄생되었다 하니 조금 더 읽어보자.
 
인생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는 반드시 죄악의 무거운 짐을 짊어 메고 나온다는데 이 죄짐이 커짐으로 말미암아 주검이라는 무서운 두 글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주검이라는 데만 공포를 느끼어 한없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공포에서 떨고 있는 이 주검을 면할 자 지상에서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주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느낌은 이것이었습니다. 곧 주검에 대한 해결책이었습니다(필자주: 죽음인 듯)... 구주의 흘리신 보혈만 의지하고 나갈 때 미지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행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과 신곡과 좁은 문을 읽은 고교생의 독후감 수준의 작품(서문)이라면, 아직 심군식을 모르고서 하는 섣부른 말이 될 우려가 있다. 전후문단을 보면, 그는 완벽한 한 편의 묵시와도 같은 설교문을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심군식의 습작기 시가 자유시 성격을 띤 산문시의 형식일 것이라는 예단을 멈추지 못하게 된다.
 
우주라 말을 할까 크나 큰 나라
지구란 동리도 말없이 있다오
동리 비록 작아도 이상하다고
그 나라 임금님은 관심이 크다
무섭다고 거절할까 죽음의 길을
누구나 당하라고 정해준 길을
피할 자 지상엔 없답니다
가엽고도 가여운 불행한 인생
나 왜 그렇게도 괴로워할까
풍랑 심한 그 동리 지구 위에서    
- <괴로운 인생> 1, 3, 5연      
인생은 등에다 죄 짐을 지고
갈팡질팡 헤매는 나그네 신세
발길 가자하는데 옮겨도 보고
혹시나 편안을 맛볼까봐
이곳저곳 갈 곳 몰라 헤맨답니다    - <고통 많은 세상> 3연
 
심군식의 첫 시집엔 잊지 못할 일화가 담겨있다. 이 시집 발간을 위해서 부산, 고려 파수꾼사에 들렀을 때, 마침 박윤선 교장이 성경주석 출판 차 그곳에 계셨고, 소년 시인 심 군의 시집 발행 동기와 모습을 처음으로 듣고 대하면서 격려했던 일이 있었다. 고려 파수꾼 32호를 열어보자. 아래 글의 제목에 <묵시의 시집을 출판하는 믿음의 학생>이라 제시했다.  
 
... 학교 선생님에게나 상급생인 기독학생 간부들에게 멸시와 조롱과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진리를 부둥켜안고 고민과 눈물로 4개년 동안 세월을 보내다가 시집 「괴로운 인생」의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 고려 파수꾼사는 이런 보물을 귀히 여겨 여러분의 생명수가 될까하여 발행에 착수했다. 저자 심 군은 말하길 "주님은 나 같은 것을 사랑하여 기도할 적마다 깨달음을 주셨으므로 이 책을 꾸민 것입니다."라고... 과연 어린 학생의 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시집이다.
- <파수꾼 32호, 1953년>
<계속>
 
윤춘식 목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선교학과 교수 역임(Ph. D./D. Min)
ACTS 라틴선교연구원장
2015년 예영커뮤니케이션 외 5권 출간
예장·고신총회 파송으로 28년간 남미 아르헨티나 원주민 선교사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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