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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 | 아버지 품으로(왕상 19:9-10) 2020-05-18 2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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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대째 모태신앙이지만, 저에게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은 저를 용광로 속에서 훈련시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컸던지 오늘은 저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1. 어릴 때.
제 인생에 제일 먼저 찾아온 고난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엄마의 고난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시려고 기복적으로 교회와 목사님에게 충성을 바쳐서 이름을 점지해서 받았는데 그 이름이 김 양재였습니다. 의과대학 병원에 날을 잡아서 파란 이불과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들어갔는데, 제가 태어났습니다. 몇십 년 후에 쓰임 받을 딸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엄마는 딸을 낳은 것에 대해 해석이 안 되어 새벽부터 변소 청소와 남의 집 빨래하러 가시고 자녀들을 하나도 안 돌보셨습니다. 저는 나이 아홉 살에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정신연령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공부 잘해서 시집 잘 가라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고 공부 잘하면 사도 바울처럼 고난만 많다는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전혀 자기를 안 드러내시니, 교회에서도 무시당하셨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시험 봐서 들어가는 이화여중을 들어갔고 엄마는 당연히 입학식에 안 왔습니다. 아버지는 성품으로 어머니는 믿음으로 학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 학생의 때.
집이 망하고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주제가는 고등학교만 가라는 것입니다. 가난하니 국립대를 꼭 가야 했는데, 부모의 도움 없이 재수도 안 하고 서울대 피아노과에 들어간 후 집이 더 망했습니다. 소녀 가장처럼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집 생활비도 보태야 해서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4년을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제가 얼마나 처절한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데이트도 못 했지만 바빠도 반주하러 교회는 나갔습니다.
 
3. 결혼의 때.
졸업할 무렵 결혼을 해야 할지 서울예고 전임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선본 집이 유명한 기업에 장로님 댁이고 의사 아들이니 조금 더 괜찮을 것 같아서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모두 교회 반주하더니 축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되는 인생이었는데, 기가 막힌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집을 갔는데 무학자이신 시어머니께 청소와 빨래를 못 한다고 눈만 뜨면 야단을 맞았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TV도 못 보고, 책도 못 읽고, 피아노도 못 치고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나 싶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인간관계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문밖출입을 못 하며 완전히 감옥에 굴에 갇힌 삶이었습니다. 노력했음에도 저는 걸레질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주일이면 가족들 모두 장로석에 가서 앉았지만 점점 죽어 가는 제가 교회에서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교회 가는 것이 고역이 되었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는데,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 집 망했을 때도 원망하지 않았고 죄라면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 엘리야와 똑같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원치 않는 나의 감정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착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직면하게 하는 고난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회개까지는 못 나갔습니다. 시어머니께 ‘네네’하니 아무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는데, 저는 그런 제가 위선자 같았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말할 지체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을 못해서 죽음을 택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눈만 뜨면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갖추고 있으니 말씀이 안 들립니다.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데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이 제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못 깨닫고 있었습니다.
 
4. 회개의 때.
드디어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걸레질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오 년이 되어 가는데도 내가 걸레질할 손이 아닌데 하면서 핑계와 변명을 대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굴속에 있는 저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냐고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집회 간 것도 아니고 집에서 걸레질만 하고 있는데 소경을 보아주신 예수님이 저를 보아주셨습니다. 친정엄마 생각이 처음으로 난 것입니다. 어머니 평생의 설교 노트를 아무 생각 없이 버리고 그 초라한 외모를 보고 딸인 저조차도 엄마를 차별했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땅끝까지 내려와서 걸레질이나 하는 인생을 사니,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믿음 있는 엄마의 소중함이 깨달아졌습니다. 내가 발바닥도 못 따라갈 그 이타적인 엄마도 무시를 당했는데 내가 시댁에서 무시를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돈을 좋아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비웃었다고 했는데, 내가 사명 때문이 아니라 야망 때문에 공부하고 피아노 치고 결혼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돈 좋아서 모든 것을 했는데도 속으로 스스로를 옳게 여기고 겉으로는 안 그랬습니다. 남편이 기사를 데리고 선보러 오니 미혹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는 건 제 살아온 날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니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깨달아졌습니다. 거듭나고 보니 엄마처럼 살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늘 제가 너무 가증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온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것’을 귀하게 보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다고 칭해주시기에 지금 걸어가는 것입니다. 제 간증으로 이혼을 안 하고 자살을 안 하기를 원한다면 너무나 기쁨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것보다 천만 배 노력했습니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불신결혼을 하면 안 됩니다. 불신결혼 시키지 않으려면 자녀들에게 큐티를 가르쳐야 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매일 자녀들에게 예배드리라고 말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리고 싶을 만큼 솔직하고 진솔하게 삶을 나누어야 자녀들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회개하니 시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질문하실 때마다 정곡이 찔렸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 원망도 하고, 하고 싶은 말씀도 드리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칠천 배의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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