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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 | 그대로 당해야 하리라(왕상 20:22-43) 2020-05-30 03: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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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은 남의 일에 판단 요청 받을 때에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면서 큰소리쳤지만, 바로 그것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 될 줄 몰랐습니다.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행한 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첫째.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벤하닷과의 1차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진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왕에게 명령형 동사로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고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하던지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생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지만 우리가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십니다. 1차 전쟁 때도 아합의 실낱같은 믿음을 보시고 아합이 선봉을 서지도 않았지만, 대승을 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총지휘관은 아합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계속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영육간 실력을 쌓고 지켜주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적의 공격이 극심하더라도, 우리 인생의 총지휘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치열하게 훈련해야 우리 몸이 기억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억해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치열하게 몸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과 신복들은 패인을 분석하고 2차 침략의 전략을 짜는 내용이 나옵니다.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그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단정하고 군대와 병기들을 보충하고 평야에서 싸우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두 무리의 작은 염소 떼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이 중요한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무소 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이겼다고 생각할 ‘그 때에’ 1차 전투에서 승리를 예언하고 전략을 알려주었던 바로 그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 가운데서 또다시 능력을 보이심으로서 북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다시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기게 하신다고 했지만 칠 일 동안 기다리게 하시고 하루 만에 아벡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아람 군대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십만 명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벤하닷은 또 살아남았습니다. 무조건 사로잡아야 할 사단의 괴수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줍니다.
 
셋째.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히브리어의 ‘헤세드’ ‘자비, 언약에 대한 신실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벤하닷은 목숨을 구걸하면서 아합을 인자하다고 속였습니다. 헤세드라고 표현한 벤하닷의 말에 아합은 속아서 그에게 언약적인 헤세드를 베풀고 있습니다. 아합의 이러한 헤세드는 북이스라엘로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언약, 자비, 헤세드를 짓밟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서 벤하닷을 마땅히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 많은 아합은 치밀한 사단에게 틈만 나면 속아 넘어갑니다. 아합은 죄인 됨을 모르기에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인자하다는 벤하닷 한 마디에 우쭐해져서 벤하닷을 나의 형제라고 하니까 벤하닷도 그 말을 얼른 받아 확증하려고 왕의 형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긍휼은 범죄요, 잘못된 긍휼입니다. 외인에게는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합니다. 동성애는 죄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벤하닷 1세가 사마리아가 자기를 위하여 거리를 만든 것처럼 아합에게도 다메섹에 아합 거리를 만들라고 하니까 아합은 자기 마음대로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놓아줍니다.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옵니다. 아합은 마땅히 죽여야 할 사단의 왕 벤하닷과 오히려 언약을 맺고 그를 살려 보내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깨트렸음을 보입니다. 막대한 경제적 이권과 관련이 되어서 주의 언약을 세상 재물과 바꾼 것입니다. 아합이 벤하닷과 약조한 것은 선한 마음이 아니라 자기 욕심으로 놓아준 악함입니다.
 
넷째.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위예언으로 아합을 또 촉구합니다. 나는 이해가 안 되어도 항상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입니다. 선지자는 아합이 사단의 괴수를 무조건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릇된 긍휼로 자발적으로 놓아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너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 대신 목숨을 내놓고 상처도 입었습니다. 스스로 결정했으니까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나의 재물이나 재능을 쓰도록 알맞은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를 다 버리고 구원에 상관없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합은 벤하닷의 심판 자리에 자신이 서게 된 것입니다. 사형선고를 들으면 회개를 해야 하는데, 아합은 기분 나쁘고 화가 나서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선지자의 무서운 형벌의 경고를 듣고도 아합은 회개가 안 됩니다. 이세벨 같은 육적 해결사가 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딸이 결혼하고 나서 힘들어 하는데 우리들 교회 부목사님들의 설교를 들려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들도 이렇게 사시는데 자기들도 힘든 건 당연하다고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다들 치열한 훈련을 하시면서 몸에 익히시는 것 같습니다. 근심하고 답답해하지 않고 내 삶의 결론으로 아멘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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