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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18-11-09 08: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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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다 캤다. 작년 내 일기장을 보면 시월 첫 주 토요일에 고구마를 캤는데 올 해는 시월 마지막 주에 이르러 고구마를 캤으니 많이 늦었다. 둘째 주는 가서 축하해 주어야 할 결혼식이 세 건이나 있었고 그 다음 주는 처가 형제들 모임이 멀리 지방에 있었던 탓이다.


아무튼 찬 기운이 물신 풍기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지만 고구마를 캐는 작업은 매우 보람 있고 신비감마저 느껴진 농사였다. 더욱 감사한 것은 바로 어제 비가 내려 땅이 질펀하면 어떡하나,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비도 그치고 오히려 흙이 부드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간간히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지상에 드러나는 고구마는 그리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감사하다! 사실 이 말은 작심하고 연초부터 즐겨 내 일기장에 쓰고 있는 말이다. 솔직히 고구마 싹을 심을 때만 해도 이런 믿음이 내게 없었다. 더구나 지난여름이 얼마나 더웠단 말인가. 가뭄에 물이라도 풍족하게 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도 없었다. 주인의 관심과 사랑도 받지 못한 채 고구마는 외롭게 자랐다. 넝쿨을 뻗어가며 땅속 알뿌리로 황금알 같은 고구마로 살찌웠다. 고맙기만 하다. 어떤 농부는 고구마는 심고 거두기만 하니 고구마 재배가 제일 쉬운 농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비와 바람과 가뭄이라는 여름의 고난을 견디며 묵묵히 어둠속 아름다운 열매로 맺었으니 말이다.


아내는 고구마를 캐며 소리지를 정도의 탄성을 자아내진 않았지만 행여 고구마가 상할까봐 조심조심 호미질을 하였다. 벌써 세 해째 한 스무 남은 평 남짓 고구마 밭을 일구어 길지 않은 일곱 두둑을 오가며 고구마를 캐었다. 크기대로 고구마를 상자에 담았다. 그래도 먹을 만한 크기의 고구마가 예닐곱 상자나 되었다. 아내는 캐기도 전에 누구에게 선물할까를 즐거운 마음으로 궁리했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했지만 아내에게 우선권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에 먼저 떠오른 것은 어머니였다. 이태 전 어머니께 고구마 농사를 지은 거라며 갔다 드렸더니 매우 신통하게 생각하며 맛이 좋다고 여간 기특하게 여기신 게 아니었다. 먹을 만한 고구마 네 박스는 그렇게 선물로 보내졌다.


고구마는 내게 추억 어린 작물이다. 어린 날 긴긴 겨울을 나며 고구마야말로 유일한 간식이자 영양식이었다. 추위에 약해 썩기 쉬운 작물이니 사랑채 윗목에 볏짚 통가리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틈새로 하나씩 꺼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때때로 고구마를 썰어 밥을 지을 때 밥솥에 넣어 먹었다. 쌀이 부족한 때 고구마와 버물려진 고구마 밥은 달짝지근하여 반찬이 없어도 끼니를 때우는 별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 어울려 논두렁 언덕배기에서 불을 피우고 함석 조각을 얹어 고구마 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나아가 설 명절을 앞두고 고구마엿을 고아 알큰 달콤한 맛으로 할머니는 손주 사랑하는 마음까지 담아 내 미각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고구마다. 원래 고구마의 원산지는 열대 아메리카로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일본을 통하여 전래되었다고 한다.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말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되었는데 1763년 조엄(趙?)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던 중 대마도(對馬島)에 들러 그 종자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게 한 것이 처음이란다. 아무튼 고구마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구황(救荒)작물이었다. 하기야 요즘은 웰빙 식품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있으니 고구마 귀한 줄을 알고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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