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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 2019-03-22 09: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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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던가. 결코 아내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지만 요즘 내린 결론은 적어도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손해 보지 않으니, 지극히 현실적인 논리에 긍정한다는 것이다. 사필귀처(事必歸妻)란 말이 있다. ‘중요한 결정은 결국 아내의 뜻에 따른다’는 역설이 담긴 우스갯소리다. 최근 나는 이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일절이 낀 연휴였다. 모처럼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어디 운치 있는 고장에 여행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는 당신 혼자 연휴를 보내면 안 되겠느냐며 이 기회에 고향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효도 한 번 하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아내는 몇 년을 벼른 친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다. 그 저녁이었다. 아내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꼭 어머니와 같이 자요. 어머니 얘기도 귀 담아 듣고요.” 처음에는 착한 며느리인 척하는구나, 내심 시큰둥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아내 말을 먼저 귀 담아 들어야 했다. 그 밤과 다음 날까지 어머니와 나는 함께 하였다. 집 모퉁이 하우스 텃밭에 거름을 내고 일구었다. 어머니는 웃자란 풀을 뽑고 냉이도 캤다. 어머니는 아버지 얘기를 들려 주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유독 넋두리처럼 당신의 지난날을 말하고 싶어 하셨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가 지난날 고생했던 얘기를 지금에 와서 말하면 뭣하겠느냐며 하지 못하게 막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후회가 된다고 하였다. 칠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어린 동생들이 다 태어나기도 전에 ‘입살이’가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지독한 가난에 식구(食口)하나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산 너머 고모할머니 댁에서 입살이를 하였던 것이다. 어린 나이 눈치 보며 허드레 농사일을 도와주며 끼니를 때웠을 어린 소년이 내 아버지였다. 더구나 주인집 또래들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데 아버지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을 터이니…. 열여섯 살 나이엔 다시금 무슨 과수원 농장에서 일하셨고 열아홉 살엔 정미소에서 일하면서 그때부터 새경을 받아 땅 마지기를 장만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당시로는 늦은 스물넷에 어머니를 만나 혼례를 올리고 이듬해 6.25 전쟁 중에 입대하였다가 오년 만에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다음 해 내가 태어났으니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인 셈이었다. 곁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으리라. 하긴 지난 해 2월 초, 아버지를 여의고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내게 아버지를 원망하며 불평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고 그 회한의 그림자를 2005년 아버지학교를 수료하며 편지를 쓰고 아버지를 찾아가 한 번 안아드리며 말끔히 지웠던 것이다. 그 후로도 아버지를 몇 번 안아드린 것이 따뜻한 흔적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그립고 고마운 내 아버지다.


열세 살, 부모님 곁을 떠나는 그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까. 아버지는 그때부터 눈물샘이 깊어졌으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뜨거운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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