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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누려야 할 노년 2019-03-22 09: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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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은 어쩌면 추수가 끝난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가 아닌가 싶다. 때 지난 허수아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서 있을 뿐이니 안타깝다.


어느 날 아침 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곳저곳이 온전치 못하다. 허리와 무릎관절의 유통기간이 지난듯  제구실을 못한다. 처음도 아니고 수년을 그렇게 견디어 낸 일이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노년의 병고란 어디 한 두 가지 뿐 인가. 다섯 손가락도 모자란다. 그래도 걸어 다니니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하다.


TV에서 강혜정 교수가 부르는 고향의 노래가 가슴을 파고든다.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뜰아래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남녘을 날아간다. … ”
언제부터 내 머리에 무서리가 내렸는가. 고향을 떠난지 반백년이 지났기에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쉽고 그립고 가슴이 찡하다.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아침저녁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늙은이의  마음을 그 누가 알기나 할까. 누구든지 가는 곳 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 받길 원하는 것이 사람이다. 노년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젊은 시절 이웃 어르신들을 눈여겨보지 않고 살아온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지난 날 온갖 세월의 질곡(桎梏)을 벗어 나온 지금도 자신을 다독이지 못하고 있으니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도 살아 있기에 사느라고 허우적거림을 어찌하랴. 이제 내 남은 삶은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푸른 시절, 그렇게 출렁이던 강물은 이제 세월과 함께 마르고 추억도 가물가물 해지는 지금, 그래도 날보고 손짓하는 그 한사람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보다 미움이 많았고 나눔보다 바램이 많았던 지난 삶을 눈물과 함께 아쉬워하고 이제 그 숫한 슬픔도 아름답게 누려야 할 지금인데 남은 길 비춰줄 등불은 깜빡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뿌린 씨앗은 어디서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되돌아보니 세월의 깊은 주름 속에 퇴색한 꿈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래도 밤하늘을 우러러 볼 때 별 하나 반짝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내겐 과분하다.


어차피 떨어질 낙엽 한 장이라면 지난 삶을 사랑하고 나를 눈 여겨 보아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들고 사랑한다며 떠나고 싶다.


원치 않았는데도 이 세상에 왔고 원치 않았는데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지나온  하나님께 감사하며 존엄한 마무리를 준비하고 싶다.

 

“사람은 있는 그 자리에서 제구실을 해야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 귓 구멍에 쏘옥 넣어준 말씀이다. 허나 뒤 돌아보니 제구실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 어찌 아이들에게 그리 살라고 채근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바라보며 기도할 뿐이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쏟아진다. 빈들에 서있는 허수아비가 겹겹히 쌓이는 함박눈을 견디지 못해 쓰러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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