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뉴스홈 > 커뮤니티 > 독자 Essay > 상세보기
실시간 키워드
프린트
제목
고상해지고 싶은가요? 2019-07-19 08:01:23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사람들은 누구나 고상해지기를 원한다.
고상(高尙)하다는 것은 사전적인 뜻으로는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는 의미이다.
어떤 면에서 고상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가.
외모가 고상해 보이시네요,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요, 말씨가 참 고상하시네요, 고상한 삶을 살아오셨군요. 고상한 생각만 하시는군요.
또,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지식을 쌓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식한 것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같이 어울리거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무식이 들통나는 것 보다는 그저 아무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니까....
그러나 세상지식은 몰라도 되는 것이 무지하게 많다. 어떻게 그 많은 지식들을 다 알 수 있으랴. 그리고 또 사실 그 많은 지식들을 다 알 필요도 없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분야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박사인 것이다. 오늘날 지식의 축적은 말할 수 없이 놀랍게 발달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그 가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수천년동안  기록 보관되어 있던 바둑기보를 알파고(이세돌과 두었다고 해서 버전명 알파고 Lee)는 혼자서 빛의 속도로 습득하고 말았다.
아니 그 이후에 나온 알파고 제로,  알파고 마스터(이 버전은 바둑기보 입력없이 바둑룰만 입력한 버전임)의 능력은 더 이상 인간과의 대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알파고 마스터와 알파고 Lee의 같은 인공지능끼리의 대결에서 나중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는 100전 100승 했다. 헐~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오늘 아침에 빌립보서 3장을 읽었다. 8절에 보니 가장 고상한 지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이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안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알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다” 는 경험에 의하여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동침하며 부부관계를 맺는 그런 깊은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을 잘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나를 잘 알고 계시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 때 주님 앞에서 “주님 제가 이러이러하게 주님 잘 섬긴 것 아시지요?” 할때  주님께서 혹시라도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하시면 정말이지 어찌할 것인가.
호세아 6장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꼭 그래야만 한다. 세상의 지식을 위해서는 밤도 새워 공부하고, 학원에도 다니고, 과외도 하지 않는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 위해서 이것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애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자녀에게도 이것을 꼭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이 고상한 지식을 알아야 하는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그것은 이것이 곧 영생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31153357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답변 수정 삭제 목록
이전글 : 그래, 바보가 한번 되어보자 (2019-07-19 07:59:35)
다음글 : 안디바도 모르면서 … (2019-07-26 09:4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