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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호 목사 | 성경 3장 16절의 비밀 (35) 하박국 3장 16절 2021-09-18 14: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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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장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에 대해서는 본서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알려진 바가 없다. 본서에서도 그는 자기 족보와 예언의 연대를 언급하지 않았다. ‘시기오놋’, ‘영장’ 등 전문 음악 용어가 나타나는 것을 근거로 레위자손으로 추정한다. 
저작 연대는 B.C. 609~589년 사이이다. 하박국의 핵심어는 ‘믿음과 정의’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말씀은 본서의 주제로 사도바울과 히브리서 기자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며 종교개혁가 루터의 개혁이념이기도 하였다.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 -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짐이니이다”(합 1:2-4)
 

여호와는 당시 하박국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하박국은 강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원했다. 심판은 하박국과 의인들에게 구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구원은 없었는가? 하나님은 어느 때까지 듣지 아니하실 것인가? 이러한 의문으로 하박국은 말문을 열었다. 그가 문제삼은 ‘강포’는 자기 동료를 해할 정도로 극심한 도덕적 파괴를 뜻한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기도에 대해 즉각 응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신 것 뿐이다. 하박국은 악이 공의를 무너뜨리는 모순된 상황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다의 부패한 사회 현실을 왜 그냥 묵과하시냐고 항변한다. ‘간악과 패역’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으로 유다는 붕괴되고 있었다. 유다는 율법이 해이해졌고 공의가 시행되지 않았다. 이 말은 유다가 내적 부패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의 판결은 강한 자와 부자, 부정직한 자의 편으로 섰으므로 공의가 결단코 시행될 수 없었다. 악인이 사회를 장악하고 다스리면 의인은 모든 방면에서 악인의 방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유다의 부패한 실상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악을 심판하지 아니하시는가? 왜 자신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지 않으시는가? 왜 의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아니하시는가? 이것이 하박국의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여호와의 첫 번째 응답 - 여호와의 응답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광범위한 심판의 선포였다. 여호와의 계시는 구원의 계시가 아닌 심판의 계시였다. 이 임박한 심판은 먼저 ‘열국’을 통해 그리고 ‘갈대아 사람’ 곧 ‘신 바벨론 제국’을 통해 시행될 것으로 언급된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며 심판의 도구로 정하신 ‘갈대아 사람’의 성격과 군사력에 대해 생생히 전해진다. “너희는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합 1:5)라고 언급하면서 실제로 이 멸망의 예고는 언약 백성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동시에 큰 혼란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 -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을 심판의 도구로 정하셨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합 1:12) 
이것은 하박국의 고통스러운 두 번째 문제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악한 나라를 쓰시는 것이 그의 절대적 거룩하심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영원하시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다. 유다에 대한 심판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심판이 패역한 바벨론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다.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정하셨다. 왜 유다보다 악한 바벨론이 심판의 도구인가? 왜 악이 공의로운 하나님께 쓸어버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번영하는가? 그들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하는 존재들인데 왜 하나님은 방관하시고 잠잠하시는가?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합 1:14-16) 
바벨론은 어부에, 유다는 바다의 어족으로 비유된다. 어부는 고기를 잡는 일에 열심을 내고 기뻐했으며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을 풍성하게 거두었다. 선지자는 다시 질문한다. 이러한 잔인함을 얼마나 오랫동안 허락하실 것인가?

 

여호와의 두 번째 응답 -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1-4) 
하박국은 믿음이 깊은 자였다. 우리는 세상에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변호하고 그분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해야 한다. 

 

하박국은 비록 지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더라도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고 그 구원을 기뻐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기름 받은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 구약에서 기름부은 받은 자들은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이었다. 제사장들은 그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기름부음을 받았고 선지자들 중에서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합 3:13) 

 

그리고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켜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 왕들도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즉위했다. 이스라엘 왕들 중 특별히 사울과 다윗, 솔로몬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칭호로 불렸다. 시편에는 ‘메시아’란 말이 왕에 대한 일반적인 칭호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이 칭호가 불려졌던 것이다. 신약시대에 ‘기름부음 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약속된 메시아직을 성취하시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아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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