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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 2019-12-20 12: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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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이 말씀은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설교 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 중에 “덕”이라는 이해하기 좀 어려운 것이 들어있다.


설교자나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미덕”과 이 말씀에서 말하는 덕을 잘 구분하지 못하거나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덕德=悳(virtue)은 ‘왜? 에서 출발한다.

 

‘덕’한자어 성경에서 번역한 것이기에 요즈음 인기 있는 장자철학 이야기에서 그 예를 빌려보면 ‘장자’의 친구 ‘혜자’가 벼가 몇 십 석 들어가는 박 씨라면서 씨앗을 구해와 땅에 심어보니 정말로 그렇게 큰 박이 열렸다.


씨를 구해온 혜자는 그 박은 너무 커서 無用之物무용지물, 사용불가라면서 깨버렸다. 그런데 장자는 그 박의 중간을 켜서 하나를 배로 타고 다니며 즐겼다. 그것을 創창 이라고 한다. 혜자는 자기 안에 있는 박-名이름-에 대한 일반 개념과 자기관념, 옛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으며, 장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궁금증-호기심-에 상식과 지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덕을 創창 만들어 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 처럼 名이름-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믿음과 지식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고정관념 때문에 새로운 세계-천국-를 선포한 죄로 반목과 괴롭힘 핍박과 고문 그리고 죽임을 당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이외의 그 무엇에게도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 천국 건설을 지속하셨는데 그 원동력이 바로 ‘덕’이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이 “믿음”의 단계를 넘어 이 덕으로 한 단계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잘못된 “믿음”과 이 “덕”에 대한 배움과 훈련이 되지않은 지도자들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구주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創창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에 맞는 세계-새 하늘과 새 땅, 천국-관이 이루어지지 않고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미덕”으로 서로 미화하며 나타내기 경쟁하느라 나뉘고 싸우다 보니 세상 사람들은 “저 높은 곳”에 가 있는데 자기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만 하고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조금 더 심한 곳은 서로 “탓”하며 다투다가 교회 안에서도 모자라 세상 법정에 까지 끌고 가 “힘”과 하나님께 바친 “예물”을 그 일을 위해 허비하는 곳도 보인다.
 
덕悳은 세상지식, 종교적관념 그리고 평판이나 비평, 비난… 이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들에게 휘둘리거나 흔들리지도 않는 直곧은 心마음 이기도 하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지식은 설명 가능하고, 믿음은 일부 표현 가능하지만 덕은 내면의 변화 “거듭남”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세계-천국-관에까지 이른다. 내면 변화를 위해서 세계의 모든 것-宇宙萬物-과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궁금증과 호기심 통찰력과 분별력을 총동원하여 핵심원리와 문제를 포착하여 체계적인 공부를 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기-만들기- 위해 집요함 ‘몰입’을 통해 그 안에서 진리와 길과 생명을 찾아내어 또 다른 지식을 만들어-개혁하여- 자기 양식-“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을 만들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이 “덕” 이다.


그것이 “진리”-“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이 확신 될 때 칭찬이나 욕하고 거스려 악한 말을 하고 거짓을 꾸며내 핍박하고 죽인다 해도 내면 즉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곧은 마음 그것이 덕이다. 그 덕의 본을 보여 주신분 역시 우리의 구주와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러므로 이 “덕”의 단계에서 함정에 빠지면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덕의 단계를 건너뛴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실천하게 하려고 많은 노력, 힘과 능력 그리고 재물을 들여도 변화 “거듭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음을 모르는 “자칭 지도자”종교인들이 늘어남을 뜻 깊은 분들은 걱정을 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설득은 정치다.” 라는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세계의 새로운 체계, 천국 건설을 시작 하셨으므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덕이 없는 당시의 힘, 정치 권력과 종교의 권위를 한 손에 쥔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지한 무리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지 않았는가?


혹 나는 그 부류 중의 하나에 속하지 않았는가 크리스마스를 기해 다시 오마 약속하고 가신 그 분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한 번 살펴 보면 좋을 듯 싶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 사랑 안에 숨겨 두었던 덕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증명하신 동시에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며 이 모든 것들과 말씀들을 “은혜”로 받으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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