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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회복의 기쁨 2020-05-19 13: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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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미를 펼치는 순간, 따뜻한 감동이 흘렀다. 차디찬 얼음덩이인데도 말이다. 거기 비닐에 싸인 덩이마다 원색 테이프에 단정한 처남의 글씨가 보였다. 쑥국, 황태국, 된장국, 파게장 등. 굳이 명명하건대 지극한 정성이 얼음덩이로 굳은 사랑이라는 선물이었다. 이 얼음덩이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따뜻한 국이 된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기 마련인 시누이 남편에게 누가 이렇게 각별한 사랑을 쏟을 텐가. 순간 내 모습이 참 작게만 느껴졌다. 나는 우쭐하여 잘난 척하기도 했다. 마치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깊은 갈등의 매듭을 혼자 힘으로 풀어낸 것 마냥.
 
아내는 처가 여섯 남매 가운데 여자 형제의 막내였다. 밑으로 손아래 두 처남이 있긴 해도 세 자매의 막내여서 나는 막내 사위였다. 그 까닭에 처가에서 그다지 행세할 명분도 없었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우리 집은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큰 처남댁과 가까이 있었다. 이 모양 저 모양 장모님을 자주 뵐 수 있었고 장모님도 우리 집에 종종 들렀다. 시집간 막내딸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테고 외손주가 귀엽기도 했으리라.
그렇다 보니 나는 알게 모르게 장모님의 속사정을 나름 느낄 때가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동거는 아무래도 생태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은 사랑의 능력일 터, 당시 처남 부부는 자영업을 하다 보니 장모님의 역할이 컸다. 집안 살림은 물론 여러모로 존재감이 드러났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오신 장모님은 급기야 당신의 고충을 눈물로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직감했다. 그냥 이대로 설득하고 무마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었다. 막내 사위였지만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나섰다. 온 자녀들을 불러 모았다. ‘자녀 된 도리를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결론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아직 건강하시니 따로 살게 해드리자고 하였다. 모시고 사는 것만이 효도는 아닐 터다. 지방에 사는 작은 처남 가까이 방을 얻어 자녀들이 자주 돌보기로 하였고 생활비도 성의껏 분담하였다.
구순이 가까울 때까지 장모님은 그렇게 자기 생활을 하셨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 생활을 하며 화분에 꽃과 채소도 가꾸는 여유를 누렸다. 급기야 혼자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될 무렵 큰딸이 어머니를 모셨다. 그렇게 몇 년을 사시다가 결국 요양원에서 마지막 생을 정리하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나는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기력이 쇠하신 장모님의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드렸었다. 주님, 이제 품에 안아 주소서!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일찌감치 홀로 되신 장모님은 큰아들이 사는 대처로 거처를 옮겼지만 궁색한 처지였다. 이래저래 장모님은 부담스러워하셨다. 하긴 나는 결혼하고부터 매월 장모님께 작으나마 용돈을 보내드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장모님은 막내 사위인 나를 대하는 인사말은 늘 ‘미안하네, 고맙네.’였다.
말년에 짧은 기간이지만 장모님이 요양원에서 지내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이 크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셨던 것도 어쩌면 가족을 떠난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입버릇처럼 ‘형제 화목(和睦)‘을 강조하셨다. 그 덕에 자녀들이 서로 존중하고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효도는 계명(誡命)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많은 선지자와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했다. 그러나 십계명만큼은 하나님이 직접 친필로 쓰지 않았던가.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은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정말 두렵고도 복된 말씀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앞을 내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례 이후 형제들이 더욱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장례를 마친 후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 둘째 동서와 밀담을 나누었다. 형제 우애를 도모하려는 순수한 마음이 통했고 그 형님은 평등한 나눔을 제안했다. 또 일정 부분은 따로 남겨 가족여행을 하자고 하였더니 흔쾌히 찬성하였다.
그리고 나는 별도로 큰 며느리의 수고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격려하였다. 장모님의 마지막 선물은 그렇게 온 가족이 하나가 된 아름다운 조화였다. 한때 원망과 회한으로 점철되었던 갈등이 이렇게 극적으로 풀어져 은혜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이제 처남의 댁은 내게 매우 자랑스러운 형수님이다. 그분은 교회에서도 남다른 봉사 정신을 발휘하며 신실한 권사로 섬김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 아내가 내게 알려 주기를 올케가 반찬 꾸러미를 들고 우리 집까지 찾아 왔다고 하였다. 한 마디 더했다. “마음 하나 바뀌니 저렇게 달라지네요.” 인내와 용서로 맺은 회복의 열매였다. 확실히 예전보다 더 뜨거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벌써 세 차례나 가족여행도 했다. 참으로 감사하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최기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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