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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2020-09-12 0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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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어머니는 막내자랑에 정신이 없으시다. 
부잣집 딸과 결혼한 막내는 늘 올 때마다 맛있는 것들과 용돈까지 푹 찔러 드리니 그럴 만하다. 장남으로 평생 어머니를 모셨건만 칭찬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순이 할머니에게 큰애는 내가 데리고 살지마는 내외 모두가 잔재미 없는 애들이라고 속내를 풀어내시니 섭섭하기 짝이 없다.


“얘야, 순이 할머니가 오셨다. 어제 서울 막내가 가지 온 맛있는 것들을 내 오렴!” 자랑하고 싶으신 것이다. 카랑카랑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층 서재까지 들려왔다.
“네, 어머님, 서두를께요. 잠깐이면 됩니다.” 상냥하고 고분고분한 아내다. 잠시 후 아내가 황급히 서재로 올라왔다. 
“여보! 큰일 났어요. 애들이 그걸 다 먹어 치웠어요.”
눈앞이 캄캄하다. 
“이 사림아, 어머니를 한 두 해 모셨어? 아이들 몰래 감춰 두어야지. 또 잊었어?” 
거칠고 야무진 호통에 아내는 서재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어깨를 들먹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욱” 한 성격을 닮은 탓에 늘 아내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내 주특기다. 아버지 앞에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오신 어머님을 보고 자란 내가 그 전철을 밟고 있다니 ‘대를 이은 저주’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하랴! 문제의 해결은 아내 손에 달려 있으니 어찌하랴, 정신을 차렸다.

 

“여보! 어떻게 해? 내 잘못이야! 어머님이 부르시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지!” 
꼬장꼬장한 어머니의 불똥이 이곳저곳에 튈까싶어 겁이 덜컥 났다. 아내는 마무 말없이 일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떡인다. 
“여보! 당신은 서재에 가만히 계세요 내 알아서 처리 할 터이니 걱정 말아요.” 
아내는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아내가 나간 서재는 썰렁하다.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내 간장을 녹였다. 
‘무엇을 준비하는 것일까’ 조바심이 났다. 내려가 물어 볼 수도 없다. 
‘아내를 믿자. 믿을 수밖에 없다.’  숨 막히는 시간이 흘러갔다. 
안방 문이 여닫치는 소리와 함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님! 옆집 은실이가 친정에서 가지고 왔다는 진짜 도토리 묵이예요. 양념간장에 정성을 다했어요. 우선 요기나 하세요.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곧 준비할게요. 그리고 어머님이 말씀하신 그것은 어제 아이들이 다 먹어 치웠어요.” 

 

조심스럽고 장황한 아내의 설명이다. 어머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분명했다. 구형 받은 범법자가 판사 앞에선 기분이 아닌가. 어머님의 반응에 귀를 쫑긋이 세웠다. 
“그래? 진짜 묵이구나. 벌써부터 묵이 먹고 싶었는데 참 잘됐다. 이 묵을 어디 그까짓 과자에 대겠니?”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멎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서재에서 발딱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아내는 이미 거실에 나와 가슴에 손을 대고 심호흡을 한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었겠는가. 가련하다.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말이 없다. 
“여보, 정말 고마워! 당신은 내게 과분한 여자야! 내가 또 잘못했어!”고해성사다. 
“아네요. 부부란 친구 같은 거래요. 그냥 받아주는 것 아네요? 사랑은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라고 친정어머님이 늘 말씀하셨어요.” 
그렇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를 한 번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꼬장꼬장한 어머님의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소화시키면서 살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 ” 서정주 시의 한 구절로 똑 부러지게 답하리라! 
“ …사랑한다는 건 / 가슴 무너지는 소리 / 듣는 / 법을 배우는 일이다.… ” 
내 가슴에 안긴 아내의 흰 머리칼이 창가에 들어오는 저녁노을에 금빛처럼 찬란하다. 

 

정하득(발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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