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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창욱 목사님 소천 3주기를 맞으며 2020-09-19 13: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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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창욱 목사

 


'내 일생에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결혼을 안 한거다’
소천하시기 전, 목사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최 목사님께서는 마지막 몇 해를 양로원에서 홀로 보내셨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가족이 없음을 후회하셨을까? 그러나 필자는 남향미 목사님과 장인식 목사님께 가끔 목사님을 찿아뵈었던 일을 기억한다. 한번은 남 목사님이 아들 여호수아를 데리고와 특별히 최창욱 목사님를 위해 첼로 독주를 했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 때 목사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 장 목사님께서는 최 목사님을 방문 시 귀한 생선회를 가져오시곤 하셨다 .


목사님께서 생선회를 너무 좋아 하셨기 때문이다.
한번은 회를 드시며 평소 안하시는 농담을 하셨다.  '나는 용궁에는 못갈가야.'

목사님은 너무도 온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셨다. 평소 목소리를 높이신 적이 없으셨다. 또 남을 도와주는데는
특별한 은사가 있으셨다. 특히 후배 목사님들을 위해서는 발벗고 나서셨다. 한분 목사님께는 4번이나 목회 자리를 옮겨드렸다고 하셨다. 한 마디로 남을 도와주는 일이면 항상 앞장서셨다. 한 장로님의 사업길도 열어주셨고 어떤 학생은 진학의 길도 열어 주셨다.

 

한번은 필자가 목사님을 멕시코 선교지에 모시고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신발이 없는 어린이들을 보시고 너무 가슴 아파하시며 오실 때는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 선교사님께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뵌 것은 3년전 9월 마지막 토요일 이었다.

보통 때는 응접실에서 목사님을 뵈었는데 그 날은 달랐다. 목사님이 누워계서서 방으로 가서 뵈어야 했다. 목사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나 역시도 말 없이 없었다. 목사님은 이제 좋아 히시던 모찌도, 은대구조림도,  생선회도 못드시게 되셨다. 평소 운동을 안하고 집에만 계셨으니 다시 걷지못하게 되신 것이 분명 했다. 그날은 필자가 떠날 때도 일어나지도 못하셨다. 평소에는 건물 밖에까지 나오셔서 필자를 배웅하시곤 했었다. 이제 목사님을 다시 못뵐 것 같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목사님 소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은 없으셨지만 다행히 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님이 아버지처럼 잘 모셨었다. 황혜경 원장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목사님은 오랫동안 미국장로교 총회에서 한국 교회 담당 스텝으로 일하신 후  후진들을 위해 조기은퇴 하셨다. 목사님이 총회에서 시무하시던 기간에 한국 교회들이 계속 늘었었다 .
이는 목사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사명감의 결실이었다. 목사님은 많은 한인교회 목사님들을 심고, 키우고,  후원하셨다. 또 어려운 교회들을 도우시고 계속 방문하여 격려하셨다. 내가 다니던 몽고메리 장로교회에도 여러번 오셨었다. 그 당시에는 장로교 총회본부가 애틀랜타에 있었는데 하루 왕복5시간 운전을 사양치 않으셨다. 오시면 11시 예배시 설교를 하시고, 오후에는 제직훈련을 하셨다.

 

목사님은 전국의 교회들을 순방하셨다.
이렇게 해서 미국 장로교 한인교회협의회가 목사님 덕분에 자리를 잡았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큰 일을 하셨다. 목사님은 평신도 지도자들, 특히 여성지도자 양육에도 힘을 쓰셨다.
한마디로 목사님은 미국 장로교 한인교회의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목사님은 대단한 설교가이시기도 하셨다. 필자가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은것은 1982년 알라바마 몽고메리 장로교로에서로 기억한다 . 필자는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그 때 필자는 장영일 목사님이 개척하신 교회 평신도였다.
 

그 후 미국장로교 총회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당시 필자가 시무하던 아틀란타 중앙 교회에서 원로목사님으로 모셨었다. 이때도  설교하실 때면 온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던 일을 기억한다. 가끔 필자의 설교를 녹음해 목사님의 자도를 받는 특혜를 누렸었다. 한 가지 특이한 일은 필자의 서투른 목회에도 전혀 말씀이 없으셨던  것이다. 부탁드린 일만 하시고 질문에만 답하셨다. 참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벌써 소천하신지 삼년이다.
 

목사님의 인자하신 모습과 설교하시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남을 도와주시던 일들도 생각난다. 그렇다.
늦었지만 나도 남을 돕고 살리고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목사님을 조금 이라도 더 닮아서 목사님을 다시 뵐 때 부끄움이 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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