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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2020-12-05 06: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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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일 예배 시에 불리는 찬송가가 참 은혜롭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이 찬양을 할 때는 솔직히 진심 반, 거짓 반입니다. 왜냐하면 찬송을 부르는 이 순간만큼은 근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아니면 설교 중간중간에라도) 각종 근심, 걱정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걱정 근심은커녕 스트레스도 거의 없는 유별난 인간인데도 잠깐 잠깐씩 근심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가장 큰 근심은 경제, 즉 재물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담 이후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며 그중에서도 선진국에 속하는 이 땅에서 가장 큰 근심은 오히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입니다. 이런 질문과 근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불신앙임에 틀림없지만 그런데도 우리 중 누구도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요즘은 코로나 19라는 어마무시한 전염병으로 우리의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제 아내는 걱정인형(Worry Doll)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우 예민한 편인데 요즘 부산에서 다시 창궐하는 코로나 19로 인해 매일 노심초사입니다. 뭐라고 말해봤자 뭐 괜찮아지겠지 하며 심드렁하기만 한 남편 대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더군요.
 

걱정에 대한 격언이나 속담을 찾아보면 의외로 출처가 티벳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란 속담도 있고 “이루어질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걱정해도 소용 없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이게 뭔말이여?)라는 아주 당연한 말도 티벳 속담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얘기 중에도 귀담아들을 많은 속담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 많은 속담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린들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걱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것이 아닌 남의 이야기는 늘 생경하고 안 맞는 옷같이 낯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누군들 걱정하며 살고 싶겠습니까? 자기 마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할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려니 할 뿐이죠.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걱정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예수님의 말대로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지만 살다 보면 이 말조차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조차 내겐 “생판 남”의 이야기로 다가올 때가 얼마나 많던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사실 그것 외에는 다른 길도 방법도 대안도 없기 때문입니다. 참선을 하고 명상을 한다는 것, 우리의 의지를 다잡고 생각을 돌리는 것으로는 한 순간의 위로는 될 지언정 근심을 벗어나 참된 평안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명확한 길을 제시하셨는데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못 미더워 할 뿐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이 찬송은 19세기를 살았던 히윗(Hewitt. 1851~1920) 여사가 누군가의 폭력으로 사고를 당하여 병상에 있을 때 지은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증오와 원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길을 걸어가겠다는 고백은 비록 그녀의 인생이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가시밭 길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 마음은 누구보다 풍요로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자 세상과 구별되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구요? 당연하죠. 이런 생각들을 풀어놓고 다잡아가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걸요. 그러나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상한갈대(발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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