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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용 목사 | 신앙의 사칙연산(The Four Rules of Faith) 2021-01-02 13: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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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되면 성도님들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음식과 점퍼 등을 나누는 일을 해 왔는데 할 때마다 들었던 마음이 왜 꼭 무슨 날이 되면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다. 올해는 그나마도 팬데믹 상황 가운데 마음뿐이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아쉽기만 하다. 수학의 사칙 연산은 더하기(Plus), 빼기(minus), 곱하기(times) 그리고 나누기(divided by)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더하기와 빼기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곱하기와 나누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신앙생활도 사칙 연산이 적용된다. 신앙은 더할 것과 뺄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때 더하기와 곱하기만 추구하던 인생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것을 깨닫고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

 

더하기(Plus)의 신앙은 주 예수를 영접한 자들에게는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더해(행 16:31, 요 1:12)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어(엡 4:22-24)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케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 지식으로만 알던 신앙이 영적 체험을 하게 되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져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요 12:24) 신앙안에서 더할 것이 온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골 3:12-14).

빼기(minus)의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했으면 영원한 것을 소유하기 위해 세상 것, 육신의 것을 포기하는 삶을 말한다. 다시 말해 끊을 것 끊고, 버릴 것 버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유익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겨 버렸다(빌 3:7-9). 고전 13장 11절에서도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는 말씀처럼 신앙의 초보일 때에는 용납되던 것들도 신앙이 자라면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일 때는 실수와 잘못도 귀엽게 보지만 성장한 다음에는 이해되고 용서받기보다는 오히려 욕을 먹고 화가 되며 독과 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경에 보면 재물 많은 부자 청년(마 19:16-22)이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자 청년이 재산이 많아 근심하며 돌아갔다. 우리의 죄성(의심, 욕심, 근심, 탐심, 교만)을 끊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빼내야 한다. 빼기의 삶은 당장은 손해인 것처럼 보이나 멀리 보면 이득과 성장을 넘어 성숙에 이른다.

 

곱하기(times, multiplied by)의 신앙은 한 소년의 도시락을 드림으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마 14:13-21)과도 같고, 옥토 밭(좋은 땅, 마 13장)에 뿌려진 씨앗의 100배, 60배, 30배의 결실과도 같으며 흉년을 피해 그랄 땅으로 내려갔던 순종의 사람 이삭(창 26:12-25)은 정착하여 농사하는 농부가 아니라 양떼를 기르는 유목민이 농사하여 백배나 거두었다. 그것도 모두다 흉년이 들 때 하나님으로부터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는 복을 받았다.

 

나누기(divided by)의 신앙은 예수님이 친히 본을 보이신 삶으로 예수 안에서의 참된 교제와 섬김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곱하기의 복을 주신 것은 창고에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누기를 잘하라고 주신 것이다. 나눔의 삶은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알몸으로 나왔으니 알몸으로 돌아갈 것이요 주신 이도, 거두시는 이도 야훼시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는 욥의 고백처럼 깨닫는 것이다.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눅 19:1-10)도 주님을 만나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눅 19:8)고 고백한다.

 

나누는 삶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 행동이다. 초대 교회 성령의 역사처럼 서로 교제하며 나눔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잠 11:24)이지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말씀하셨다.

세상과 현실은 더하기와 곱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신앙은 빼기와 나누기를 잘 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향기를 발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하나님은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신다(빌 4:19). 그리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신다(고후 9:8). 

 

바라기는 2020년을 보내며 2021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사랑과 소망을 나누고 기도와 물질을 나누고 무엇보다 남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지고,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나누며 받은 복을 주는 복으로 더욱 풍성한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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