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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 “아들아, 용서해주렴” 2021-02-26 07: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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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루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몹시 흔들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렇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던 지난날이 있었다. 그런 내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고 지금의 내 안목이란 잣대로 요즘 10대들을 바라보니 속이 부글부글 거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라고 한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처럼, 우리의 생각에도 두 얼굴이 존재한다. 바로 ‘기억’과 ‘망각’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훌훌 털어버린다. 우리의 삶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어디쯤인가를 그렇게 헤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10대인 손자나 손녀의 행태(?)에 종종 숨통이 막히는 것은 어쩔 수없는 삶의 한 과정이 아닌가 싶어 탓만 할 수 없지 않은가. 
고분고분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바짝 쳐든다. 


“엄마, 나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상관 마. 이젠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예요.” 
대들기도 한다. 이때 엄마는 아이의 발달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도 그때는 그랬으면서) 
사랑은 상대에 따라 눈높이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사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수용하게된다. 그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되 지나친 간섭은 피해야한다. 이제는 자식이라기보다 친구같이 대하면서 공감해주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 그 옛날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면서도 아이들 마음과는 항상 평행선을 긋고 만나지 못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깔깔거리지 못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를 거닐어 본적도 없다. 더구나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지도 못했다. 그건 꿈조차 꾸지 못했다. 

 

‘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번의 여행이 더 낫다’는 말을 상기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입술로만 성공하라고 벼랑 끝으로 아이를  몰아붙인 한심한 부모였다. 언젠가 손자와 함께 깔깔 거리며 놀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무척 부러운 눈치다. 아들의 시선이 무척 부담스럽다. 말하자면 제발이 저린 것이다. 저를 키울 때 아비의 무정한 뒷모습을 자꾸만 헤아려 보는것  같다. 
“아들아, 미안하다. 너 어릴 때는 애비가 너를 지금 손자같이 키우지 못했어. 용서해 주렴!”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들 녀석이 “아버지, 그 시절은 다 그랬어요. 그래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이 저를 길러 주셨으니 제 됨됨이는 아버지를 닮았잖아요? 정말 감사해요.” 눈물을 그렁거리며 다가와 내 목과 어깨를 주물러 준다. 손자 녀석도 따라서 조물 거린다. 정말 행복하다. 50년이나 된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가 “딩… 딩… ” 정오를 알린다. 삼대가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함께 미소를 짓는다.   <정하득 발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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