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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목사 | 기독교 신앙을 방어하라 79 2018-11-09 09: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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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증명으로서의 변증학: 하나님의 존재
3. 형이상학적 논쟁 (Metaphysical Argument) (계속)


인간의 세련된 기술일 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에 비교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는 전체를 한번에 보시고 전체와 객체의 본질의 속성과 특성을 한번에 아시는 완전한 지식(시 139:1-16)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능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광대함을 통하여 자신의 지혜를 펼치시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적은 원자까지도 서로 각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시는 지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들의 지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안에서만 파악되는 제한된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확실하게 할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다 (AGG, 106). 다윗도 그의 시편에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편 8:4,5)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으로 지으신 것이다(창 1:26). 여기에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구별은 매우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전 우주와 인간과 모든 어류와 새들 그리고 단세포 아메바에서부터 동물과 식물 그리고 지구를 포함하는 은하계에 있는 별들의 진화를 완전히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존재들은 존재 객체로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에 있어 “각기 종류대로(each according to its kind)”(창 1:11, 12, 21, 24, 25)라는 문구를 반복하여 기록하심으로 자신의 창조는 진화론이 말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불완전한 창조가 아닌 단번에 완성된 완전한 창조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Darwin)이 지질학과 생물학의 증거를 제시할 지라도 진화의 가설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현재의 과학이 제시하는 진화론의 허위에 관한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의 가설을 기반으로 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는 역시 가설로 결론지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같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을 관찰하면 피조물들은 서로 서로 협력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지역에서 각 객체가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기관과 힘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자연적 선택이나 무작위 변이(mutation)에 의한 “자연적으로(naturally)” 발생한 사건이 진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진화 자체가 가진 복잡함과 현저하게 변화된 것을 인정하는 진화론자 가운데에는 각 객체의 변화에 대해 신적 기원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ibid., 106).


이같은 내용들이 목적론적 추론인 것이다(ibid.).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자신의 글에 이 목적론적 추론을 반영시켰다. 아퀴나스의 목적론적 논쟁은 설계(the design)와 우주의 질서(the order)에 대한 경험적인 관찰(the empirical observation)에서 시작한다. 란더(Lander) 대학 철학과에서 제공한 아퀴나스의 목적론적 논쟁에 대한 글에 아퀴나스의 논쟁은 후험적(a posteriori) 논쟁이며 그 결론은 절대적인 확실함을 따를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목적론적 논쟁의 “목적론적”이란 자연적인 과정에 있는 용도와 목적과 목표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그리고 목적론적 설명은 목적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원리에 따른 자연적 과정을 설명한다고 기록한다(https://philosophy.lander.edu/intro/governance.shtml). 그러면 목적론적 논쟁의 결론은 절대적인 확실함을 따를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은 합법적인 귀결인가?


우리들은 원자(atoms), 질료(matter) 그리고 에너지(energy)와 같은 지적이지 않는 것들과 지적인 존재 모두 지적 설계자의 목적을 위해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본다(AGG, 106). 만약 우리들의 목적론적 논쟁에서의 결론이 절대적인 확신에 따를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적인 설계자의 목적을 벗어나거나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논리에 어긋난다. 존 프레임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이란 것은 “목적이나 목표와 관련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ibid.).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있기 전에 있었던 삼위의 하나님의 협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시는 구원 계획과 함께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심을 작정하셨고 그대로 시행하셨다.

 


이동희 목사
 뷸라하이츠 대학 교수
The Hodos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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