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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59) 2019-05-10 09: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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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력투구하는 야곱의 일생: (7) 얍복 강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창32:21-32)


몇 백년 전 조선시대에 있었던 일이라 한다. 당대의 유명한 붓글씨 대가(大家) 밑에서 사사(師事)하던 한 제자가 아무리 연습해도 스승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어느 날 조용히 그 비결을 여쭙게 되었고, 그 스승은 “붓대를 잡은 네 손목에서 힘을 빼라”고 일러주었다. “알고보니 쉽고 간단하군요”라는 제자의 대답에 스승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내 손목에서 힘을 빼는데 나는 10년이 걸렸다네.”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 신앙의 높은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데 있어서도 이와 같은 “손목에서 힘을 빼는” 일대 전환점을 거치게 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야곱도 예외가 아니며, 야곱이 경험한 이와같은 신앙의 대전환점이 오늘의 본문에 소개되어 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야곱의 이름(정체성)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다: “...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


야곱이 얍복 강변에서 천사를 만나 그와 씨름(Wrestling)한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나안 땅의 문턱인 길르앗(갈르엣) 지역에서 외삼촌 라반과의 송별식을 거행한 다음(창31장), 자신의 가족과 양떼를 이끌고 가나안의 변방 도시 마하나임까지 내려왔을 때 야곱은 일생 가운데 가장 두렵고 떨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두 번이나 속아 장자권을 빼앗긴 후 복수의 칼을 갈던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대항하러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야곱은 이같은 위기에 직면하여 다시한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도(창32:9-12)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특기인 잔꾀를 동원하여 위기를 모면할 작전을 세우게 된다. 그 작전 계획인즉, 우선 엄청난 규모의 선물(뇌물) 부대를 파견하여 형의 마음을 녹이는 것으로서, 총 580마리의 양, 염소, 황소, 암소, 낙타와 나귀를 세 때로 나누어 종들에게 맡기어 그들이 차례대로 형 에서에게 그 선물을 바치면서 야곱의 메시지를 전달케 하는 것이었다: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창32:17-18). 여기에서 추가로 주목할 것은 언어를 통한 치밀한 심리작전인데, 그것은 자신을 ‘종’(Servant)이라 지칭하고 형을 ‘주’(Lord)라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야곱의 작전은 이와 같은 뇌물 작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재산과 종들을 두 떼로 나누어, 만약의 경우 형의 군대가 한 떼를 치는 동안 다른 한 떼는 도망치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창32:7-8). 아울러 자신의 가족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두 여종과 그 아들들을 맨 앞에 세우고, 그 다음에 레아와 그 아들들로 뒤따르게 하고, 라헬과 요셉을 마지막에 배치하여(창33:1-2) 얍복 강을 건너게 한 다음(창32:22-23) 야곱 자신은 얍복강을 건너지 않고 홀로 남는다. 다시 말하면, 에서가 모든 재산과 가족을 칠지라도 자신은 두 발로 줄행랑을 치겠다는 계략이었다.


자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이와같은 치밀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얍복 강변 이쪽에 홀로 남아 밤을 지새고 있는 그를 찾아 온 한 사람 때문이었다. 구약 성경에서 자주 천사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고(창18; 삿13 등), 특히 호세아(호12:4)에서 야곱을 찾아온 이 사람을 ‘천사’라 규명한 것을 보면, 얍복 강변에 홀로 남은 야곱을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천사’였음이 분명하며, 전통적으로 이 천사는 천군천사의 총사령관 ‘미카엘’로 이해된다. 이 장사(將士)와의 씨름 뒤에 야곱이 그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부르며, 그 장소를 ‘프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명명한 것을 보면(창32:30) 야곱도 그를 천사로 이해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대신하는 사신(Messenger)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내용에서 두드러진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야곱이 과거에 라헬을 처음 만날 때 보여준 것처럼(창29:10) 이 천사(미가엘?)를 제압할 정도로 힘이 센 장사였다는 사실과, 이 천사가 야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 위골시킨 다음 새벽이 되려하니 -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지정해 준 시간이 다하였으므로 - 그 자리를 떠나도록 놓아달라 부탁한다는 사실, 그리고 위골된 환도뼈의 통증 가운데서 그가 하나님의 천사임을 알아차린 야곱이 그를 놓아주지 않으며 그 천사에게 축복을 강요하자 천사가 더 이상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을 지시하고 야곱을 축복한 후 야곱을 떠나갔다는 사실이다. 이튿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이른 아침(창32:31) 얍복강을 건넌 야곱은 비록 위골된 환도뼈로 인하여 절뚝거릴지라도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소지한 참 자유인(요8:32)이 되어 임마누엘의 확신과 온유, 겸손한 자세로 형 에서를 만나 서로 부등켜 안고 울면서 화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게 된 이야기는 성경 주석가들에 의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경험이야 말로 먼저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야곱의 정체성이 전환되는 경험, 즉 야곱의 신앙이 ‘율법적 신앙’에서 ‘복음적 신앙’으로 도약한, 말하자면 붓글씨의 대가가 손목의 힘을 빼는 비결을 터득하듯이, 수준 높은 신앙의 경지에서 더 이상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힘써 분투하는 신앙의 낮은 차원에서 (자신의 힘든 노력과 작전과 꾀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신뢰하며 그 임재를 확신하는 가운데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참 자유를 경험하는 더 높은 신앙의 차원으로의 도약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켜 그가 믿고 의지한 바 마지막 수단, 곧 두 다리까지도 포기케 하신 다음 더 이상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힘써 씨름하며 노력하는 인간 ‘야곱’의 정체를 떠나 ‘이스라엘’ 곧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자’로 전환되는 경험을 야곱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히브리어로 ‘야아콥’은 ‘남의 발 뒤꿈치를 잡는 자’를 의미하지만, 마치 한국어로 ‘사꾸라’라는 말이 ‘사기꾼’을 의미하는 것처럼 ‘남을 속이는자’, 또는 ‘등 뒤에서 남을 치는 자(Supplanter)’를 의미하며, 히브리어로 ‘엘’은 하나님을, ‘이스라’는 ‘그가 (대신) 싸워 주신다‘의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기에 직면한 오늘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참 자유를 맛보기 위하여 이와 같은 얍복강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전 장신대 총장
현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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