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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교수의 조직신학 강좌 78 2020-02-23 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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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선행의 관계

 

교회사 2천년 동안 구원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어 왔다. 사실 이 논쟁은 끝났다기 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모태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이라고 부른다.
죄는 인간 본성의 모든 영역을 오염시켰다. 영혼과 육체, 지성과 감성과 의지 등 모든 영역은 죄로 물들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전적타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리가 바로 인간영혼의 죽음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죄와 허물로 우리의 영혼이 죽어있다고 말씀한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그 영혼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로 태어난다. 아니 성경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원수로 태어난다고 말씀한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있다.
 
둘째, 전적으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선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차원, 수평적인 차원에서 소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선행조차 수직적인 차원, 즉 하나님 앞에서는 때묻은 의복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행, 즉 완전무결한 선행을 결코 행할 수 없다. 인간이 그 행위와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용납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완전무결한 선행, 완벽한 선행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선행은 위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나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셋째,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따라서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신 새로운 길 즉, 오직 믿음의 길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고 신뢰함으로만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신뢰할 때에 우리는 영원한 죄사함을 얻으며,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하 하나님의 자녀가된다. 죄인의 구원은 결코 행위의 길이 아니라, 믿음의 길이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주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킴으로 우리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인이라고 칭해 주신다. 이것이 칭의의 사건이다. 동시에 그 칭의의 사건이 일어나는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신다. 확정적 성화이다. 영단번의 성화이다. 의롭지 못한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의롭고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칭의와 확정적 성화의 사건 때에 성령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기 시작하시며,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다섯째, 하나님 앞에서 거듭남, 칭의, 양자됨,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한 성도는 구원의 결과와 열매로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어간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선한 일을 위함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선행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선행은 구원의 목적이며, 결과이며, 열매이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선행을 행하도록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바로 이런 분명한 복음진리에 기초해야만 우리는 날마다 영적으로 자라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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