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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수 목사 | 나와 너 관계의 영성 2021-01-08 14: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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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성 안에서 살아간다. 태어날 때에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보살핌을 받고 점차 확대되어 형제의 관계, 친구의 관계, 이웃의 관계를 경험하고 형이상학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유대교 종교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전제하고 관계야 말로 실존의 범주요, 남을 맞아들이려는 준비 태세이며, 영혼의 틀이라고 주장한다. ‘나’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너(I and Thou)’라는 기본어와 ‘나-그것’라는 기본어 안에 ‘나’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개성은 관계적 경험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면 떨어져 있는 관계가 이어지기 시작되고 대화가 이루어지고 진실한 관계가 생기게 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대화는 중요하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소개하고 인격체로서 서로를 긍정하고 대화하면 대립이 아니라 이해의 관계로 발전하여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 ‘나와 너’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확장되어 자연,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함하게 된다. 정신(spirit)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있다. 관계가 성립이 되려면 상호적 반응이 일어나야 한다. ‘나’가 완전한 인격체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상호적 관계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와 너’의 관계성을 연장하면 그 끝에는 ‘영원한 당신(eternal thou)’이 존재한다.


부버는 하나님을 ‘영원한 당신(Eternal Thou)’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나와 너’의 관계성에서 시작될 때 비로서 이해하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에(there)’에 계시지만 이미 ‘여기에(here)’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곳 모든 관계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임재 하신다. ‘나와 너’의 관계성에서 출발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은 인간의 얘기를 들으시고 답하시는 대화자로 계신다는 것이다. 종교화 된 신앙은 예배의 장소와 시간을 신성하게 여기며, 의식과 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길 원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대화와 섬김 가운데 언제나 어디서나 예배자를 만나길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모든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그 만남과 대화가 하나님을 만나는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관계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찾는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나와 너’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 사이로 밝힘으로써 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결합되어야 할 존재로 만드셨다. 결혼의 관계를 통하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로서 신자를 이해하게 된다.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종이 아니라 친구로 삼아 주신다(요 15:15). 예수님의 친구로 불린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과의 ‘나와 너’ 관계를 통해서만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 관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신뢰와 섬김의 관계로 재정립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그리스도인은 창조의 원리를 따라 ‘나와 너’의 만남 속에서 공존과 상호성을 바탕으로 인격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죄는 하나님과의 인간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오염시킨다. 이를 위해 성령님은 그리스도인 안에 계시면서 모든 세상의 관계에 간섭하신다.
 

칼빈은 죄로 인해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파괴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부패했다고 말한다. 죄로 인한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아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죄인으로서 인간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단절된 관계를 잇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 안에 있는 죄성과 세상의 죄의 문화는 다시금 신자가 죄를 짓게 만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죄악과 싸우며 실수하고 넘어질 때 회개하고 다시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 안에 계셔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죄를 자각하게 하시며 성경 말씀이 떠오르게 하시고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타락한 인간도 예수님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화해와 사랑의 관계로 돌아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곧 접붙임을 받고 그 안에 거하고 그가 내 안에 거하게 할 때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고 인간과의 관계가 재성립 된다. 누군가의 대화를 통해 전달된 복음이 죄가운데 있는 인간을 살린다. 여전히 인간을 살리는 역사는 먼저 믿은 한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온 복음을 통해 일어난다.

성탄절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의미와 목적을 믿지 않는 타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나’와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가장 가까운 부부, 자녀, 교회식구로부터 친구, 동료, 이웃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나’를 고집하지 말고 ‘너’아니면 공존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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