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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목사의 신앙난제 이해하기 9 | 어떻게 데이트를 하나? 2021-10-09 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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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는 여러가지 수준의 만남을 함축하고 있다. 단순히 남녀가 만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만나서 같이 대화도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런 데이트는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는 등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만남이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상당히 깊이 들어간 데이트도 있다. 이런 데이트에서는 둘이서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즐기기만 하지 않고, 인생을 함께 논의하며 설계도 한다. 


어떤 종류의 데이트를 하든 그 데이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며, 궁극적으로 결혼을 약속하는 최종단계까지 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데이트는 어떤 종류이든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데이트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데, 그 데이트를 통하여 결혼대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데이트를 통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요한 데이트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원리는 데이트의 대상자를 한 사람으로 국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잘못하면 ‘신앙’이라는 이유로 한 번에 한 사람만 만나야 한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결혼대상자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사귀면서 ‘나’에게 보다 더 적합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데이트의 둘째 원리는 처음부터 일대일로 데이트를 시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이성(異性)을 만날만한 기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회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기타 여러 가지 기독교 모임에서도 상대방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어떤 특정한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처음부터 그 사람과만 데이트하지 말고, 그룹으로 만나면 좋을 것이다. 그룹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일대일로 만나도 늦지 않다.
 

데이트의 셋째 원리는 너무 일찍부터 상대방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에는 준비의 기간이 있다. 인생을 설계하면서 너무 일찍 데이트에 빠지면, 그 설계에 따라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못할 수 있다. 인생의 설계를 착실히 준비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내’가 준비된 만큼 안목도 깊어지고, 그리고 그 안목에 걸맞는 상대방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얼마나 잠재력이 많은 젊은이가 너무 일찍부터 달콤한 데이트에 빠져서 인생을 착실하게 준비하는 일에 소홀히 하는지 모른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렇게 귀중한 시간과 마음을 데이트에 빼앗긴 사람들은 십중팔구 가치 있는 인생을 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보다 더 성숙할 때까지 그리고 더 준비될 때까지, 데이트를 기다리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데이트의 넷째 원리는 가능한 상대방의 많은 것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성공적인 데이트는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에 결혼대상자로 여기면, 상대방의 장단점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그 결과 결혼을 접을 수도 있고, 반대로 결혼할 수도 있다. 결혼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며, 상대방의 장점을 밀어주고 단점은 ‘내’가 덮어줄 수 있는지 저울질해보아야 한다. 만일 덮어줄 수 없는 단점이 있다면 결혼을 재고해야 한다. 
 

여하튼, 결혼을 결정했다면 인생을 같이 설계해야 한다. 인생의 목적도 나누고, 그 목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가야 할지 나누어야 한다. 서로의 경제관도 나누면서 조율할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자녀 문제, 양가의 식구 문제, 직장문제, 집의 문제 등 수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 그런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의 다른 견해를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의견도 개진하면서 절충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트의 다섯째 원리는 데이트하는 동안 육체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그들은 그렇게 귀한 몸으로 만들어주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몸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 사도의 말을 빌려보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렇다! 그들의 몸을 성령의 전으로 만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의 죽음까지 맛보지 않으셨던가?
 

젊은이들은 깊은 데이트에 들어가면서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은 불같은 욕정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그런 욕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랑 때문에 욕정을 절제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용기 있는 사랑이다. 비록 그들이 결혼을 약속했다손 치더라도 아직 한 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이 되는 기쁨과 행복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결혼은 법적으로 한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절차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런 절차를 통하여 한 몸이 된다면, 그 부부는 서로를 그만큼 더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결혼예식을 기다릴 수 없다면, 그들은 그만큼 인내에 한계를 드러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혼생활에서 부딪칠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기에 서로의 순결을 지켜주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은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젊은이이다. 
 

바울 사도의 증언을 들어보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물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혼인을 말한 것이나, 여기에서 중요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와 혼인할 신부는 ‘정결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분이 죄인들을 용서하셨기에 영적으로 정결한 처녀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그리고 교회를 아내로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했다(엡 5:23, 25). 결국, 결혼예식을 준비하는 신부는 ‘정결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충고도 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2). 이 말씀의 원리, 곧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는 원리는 디모데에게뿐 아니라, 약혼한 남자에게도 적용된다. 
바울 사도가 제시한 이런 원리는 구약성경에도 있다. 물론 구약성경의 표현은 무시무시한 율법에 근거한 것이나, 그래도 그 원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신명기 22장은 순결을 지키지 못한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 여인을 진단하고 심판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남편에게 아내의 순결에 대하여 의심이 생긴 결과 조사해보았더니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그 아내를 끌어내어 동네 사람들이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다(신 22:13-21).

 

이 율법은 여자가 순결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대목이다. 물론 현재에는 그런 여자를 돌로 쳐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전하시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곧 순결을 지키라는 것이다. 순결은 오로지 혼인예식을 통하여 부부가 된 남편과 아내에게 바치라는 것이다. 그리할 때 그들은 진정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합하는 것이다. 그렇게 결합한 부부를 통하여 하나님도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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