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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사모 | | 위로자로 오신 주님의 통로로 쓰임받는 은혜 2018-11-09 10: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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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왕이 민정시찰을 나섰습니다. 평복을 하고, 관청이나 재판정에 들어가서 보니, 곳곳마다 재판관들과 공무원들의 횡포와 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도 속이 상한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위로자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 4:1)

 

이를 본 솔로몬왕은 관청과 재판정을 나오면서 슬픈 마음이 든 나머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이런 악을 보지 않고 오래전에 죽은 자들이 더 복되구나, 아니 이런 악을 보지 않고 유산된 자나 아직 출생하지 않은 자들이 더 복되겠구나”(전 4:2-3). 그는 마음 속으로 “오 하나님, 누가 학대받는 내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요?”라는 간절한 기도를 주님 앞에 올려 드렸을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왕이 보았던 재판정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회, 직장과 가정이 이렇습니다. 여기에 뭔가 중요한 것이 결핍된 것이 있지요? 그러면 무엇이 들어가면, 이런 사회, 이런 시장, 이런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 이런 시장, 이런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말에 벗, 친구라는 말로 사용하던 “동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동무라는 말을 혁명을 위해서 함께 싸우는 동지라는 말로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바람에 우리가 잘 쓰지 않지만, 동무라는 말은 사랑이 흐르고 은혜가 흐르는 친구사이를 말합니다. 솔로몬은 그런 친구만이 우리 사회, 우리 일터, 우리 가정의 대답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학대 받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와 우리에게 위로자(보혜사)가 되어 오셨습니다. 친구와 동무가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줄 위로자가 되어 오셨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성령으로 위로하고 보듬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서 내 주변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나 남편, 자식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 나를 통해 위로자가 되어 이웃에게 가까이 가시려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시장터라는 무한 경쟁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당신에게, 패배자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당신에게 친구로, 위로자로 다가섰던 그 주님이 여전히 당신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런 친구로 다가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에게 길을 내어 주십시오.

 

이게 잘 안되는 이유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를 주기 전에, 격려와 용기라는 은혜를 베풀기 전에,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 고치려 들려는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누구든 지적을 받으면 화가 납니다. 지적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서로 지적하는 것 때문에 외로워지고 말이 없어집니다. 그냥 주님의 통로만 되도록 내어주는 자가 되면 됩니다.

 


이정애 사모
(아펜셀러기념 내리연합감리교회 이성일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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