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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교수 | 東에서 부는 바람 西에서 부는 바람·553 - 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 ⑧ 2018-11-09 17: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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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나면 언젠가 이별을 해야한다. 살아서 이별하고 하늘나라로 가면서 이별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별연습’을 해야한다. 나는 벧엘교회 40년 동안 50여명의 벧엘식구와 하늘나라로 가는 이별을 했다. 그리고 대략 300여명의 이르는 벧엘식구들이 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한솥에서 밥을 먹다가 훌쩍 떠났다. 여러가지 사정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하는 이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피치못할 교회의 어려움’ 때문에 이별을 했다. 전자의 이별은 받아들이기 쉬웠으나 후자의 이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특히 정든 목회자들과 교회 식구들이 혜어지는 이별은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 이별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혼선이 왔다. 사실 지금도 그 혼선은 가끔 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다. 왜냐하면 떠나는 사람들의 이별의 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가 떠날때는 더욱 그렇다.

 

벧엘교회에 ‘첫 세대’를 마감하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이별들이 연속해서 닥쳐왔다. 첫 이별은 김상복 목사로부터 시작하여 손인식 목사 그리고 송영선 목사로 이어지면서 ‘첫 세대’가 끝을 맺었다. 벧엘식구들은 1990년 6월 10일 김상복 목사의 송별예배를 드리고 첫 이별을 고했다. 송별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은 친교실로 내려가 김 목사와 개인적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김 목사와 나는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서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 교인들도 그랬다. 벧엘식구들은 유난히 정이 넘치는 순진하고 순진한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벧엘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벧엘교회의 ‘문턱이 높다’고 말하기도 한다. 잘못 알려진 큰 오해다. 좀 무뚝뚝한 점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일단 사귀어보면 정말 정이 넘치는 식구들이다. 무뚝뚝한 점은 좀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뭏든 이렇게 해서 김 목사는 취임 만 12년 만에 ‘한 세대’를 마감하는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 할렐루야 교회로 훌쩍 떠나버렸다.

 

1989년 7월부터 안식년에 들어가면서 교인들 사이에 이상한 말들이 돌아 다녔지만 이 소문을 믿는 교인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 소문은 김 목사가 한국 서울 할렐루야 교회 담임목사의 청빙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문을 절대 믿지 못하는 두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첫 근거는 4년동안 온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헌금한 끝에 하나님께서 현재의 본당을 선물로 주셨는데 이사한 지 2년 갓 넘어서 담임목사가 사임을 한다는 것은 벧엘식구들과 하나님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을 지은 담임목사는 곧 떠나게 되어있다’는 이른바 ‘징크스’를 말하지만 나는 이를 믿지 않았다.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 근거는 당시 우리 교회옆에 위치한 채플게이트미국교회(현재 안식교회) 건물을 구입하기로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교인총회 인준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벧엘식구들은 새 집으로 이사오면서 여러가지 ‘소망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 리스트는 다목적 체육관, 영어권 예배장소, 주일학교 교실들을 위한 건물, 두번 째는 선교사 훈련장소와 선교사들이 편히 쉬고 갈 수 있는 선교관, 세번째는 시니어들이 모여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시니어 타운, 그리고 교인묘지 등이었다. 교인묘지는 카운티로부터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이러한 ‘소망 리스트’가 햇볕을 보려면 김 목사가 앞장을 서서 이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교인들은 희망에 벅차 있었다. 그러던 중 새 건물로 이사온지 2년 째 되는 1990년 2월 채플게이트교회측에서 연락이 왔다. 교회건물을 우리더러 사라는 것이었다.

 

이사회와 당회가 만장일치로 이 교회 건물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러했다. 이사온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주일학교 교실이 턱이 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영어권이 독립적으로 예배를 드릴 공간이 필요했다. 마침 채플게이트교회 건물은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공간과 12개의 주일학교 교실을 갖고 있었으며 대지 면적이 약 9에이커에 달했다. 만일 미국교회 건물을 구입하면 벧엘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공간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으며 채플게이트교회와 벧엘교회 사이에 있는 10여채의 민간인 주택을 구입하여 은퇴 또는 안식년의 선교사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미국교회는 원래 롤링 로드상에 있는 볼티모어연합교회가 구입한 교회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미국장로교 교단이 PCUSA와 PCA로 갈라지면서 PCA교인들이 세인트존스 로드 선상에 건축비용 120만 달러를 들여 1980년에 건물을 짓고 이사를 했다. 새 위치로 이사한 채플게이트교회는 10년이 되지 않아 교인수가 2천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메리옷스빌 로드 선상의 위치한 60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고 새 교회 건물을 짓고 있었다. 때문에 현재의 교회 건물을 하루속히 빨리 팔아야 했다.

 

벧엘교회는 교인총회 인준조건으로 90만 달러에 오퍼를 냈다. 땅값을 제외한 건축비용만 120만 달러 짜리를 30만 달러나 깎은 것이다. 채플게이트교회 당회와 교인총회는 우리의 오퍼를 놀랍게도 받아들였다. 벧엘교회는 곧 교인총회를 열고 계약인준안건을 내놨다. 그런데 이 안건은 재석 과반수를 받지 못해 부결되고 말았다. 1개월 후 미국 안식교회가 이 건물을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회가 만장일치로 가결하여 교인총회에 내논 이 안이 부결된 이유를 지금도 알길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해봤다.


“만일 이 안이 교인총회에서 통과되었다면 그래도 김상복 목사가 벧엘을 떠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질문을 김 목사에게 하지 않고 있다.

 

허종욱교수

버지니아 워싱턴대 교수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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