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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섭목사와 함께 하는 QT 21 2019-02-11 16: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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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12-2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장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어제 나누었던 할례문제, 즉 구약의 율법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야고보가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 속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여기서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야고보가 그것은 이방인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 사실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율법인데?

 

저에게 이런 것이 충격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 아직 명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늘 이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어디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늘 애매모호한 답만 들어 왔습니다. 어떤 것은, 지켜야 된다고 하고, 어떤 것은 구약 시대 것이니까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그 어느 누구도 지금껏 그 근거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상 수도 없이 들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더이상 성전에서의 제사장을 통한 제사가 아닌, 그리스도인 각자가 왕같은 제사장 직분으로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성전 제사와 관련된 부분은 지킬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기 스스로 자신이 서질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구약 제사에 관한 꽤 많은 부분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말하면 뭔가 이단 소리 들을 것 같고, 불경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제사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주로 은유적인 표현으로만 쓰였습니다. 신령한 제사, 거룩한 산 제사 등등.

 

대표적인 것이 목회자와 제사장을 동일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 부릅니다. 기름 부음받은 자는 왕이나 제사장인데, 목사를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부른다면, 왕은 아닐테니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가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절대적인 권위를 선포하고 그 앞에 모든 성도들은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휘장 사건으로, 제사는 더이상 의미 없어 졌는데, 제사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그 제사장은 뭘 하는 제사장일까요? 오히려 신약 후반부에는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데 말입니다.

 

혹시 절대 권위의 부여로 누군가를 괴롭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목회자는 계급이 아니죠. 교회 내 계급은 없습니다. 섬기는 종류에 따라 직분만 있을 뿐이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소화하여 성도들에게 전달하며 섬기는 직분이요, 말씀과 기도로 위로하고 축복하며 섬기는 직분입니다. 파워를 가지고 사람들을 휘두를 수 없습니다.

 

다만 말씀을 먼저 아는 자로 죄를 죄로, 은혜를 은혜로 알려주어 성도가 성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야고보의 이야기의 핵심도 그것이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이니까. 그리하여 구원받은 성도로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29절에 보니까 잘되고 평안하겠다 이야기합니다. 오직 성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하여 제를 멀리 할 것을 가르쳐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꾸 구약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의미적으로는 좋습니다, 그러나 편한 것만 구약 율법대로 하자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은혜를 선포하셨는데, 율법으로 돌아가서 율법적 완성을 위해 서로를 괴롭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죄의 구원은 율법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다음, 감사의 표현은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은 섬기는 일입니다. 그 섬기는 일을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섬기는 자리에 서십시오.

 


서영섭목사

우리중앙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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