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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20 2019-08-09 08: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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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2

 

연방 법조항에 의해서 1781년 연방정부가 창조되었다. 미국 헌법 이전에 창조된 법 조항들은 새 정부의 힘과 의무들을 정의하려는 첫 시도였고, 또한 국민의 권한에 대해서 다루었다. 1783년 먼로는 연방국회에 선출됐고, 미국이 13주를 넘어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크게 관심을 가졌고,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첫 행동은 북서쪽으로 여행을 간 것이다. 그의 여행은 알바니 산에서 미시시피 강까지를 포함한 것이었고, 남쪽 경계선은 오하이오 강이었고, 북쪽 끝은 그레이트 레이크였다. 그가 뉴욕에 돌아왔을 때 연방 국회가 열렸는데, 그는 1787년의 북서 법령계획을 만들기 시작했고, 남쪽으로는 오하이오 강에서 서쪽으로는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하는 영역의 정부를 형성했다.


뉴욕 지역에서 봉사할 때, 먼로는 그 지역 부유한 상인의 딸인 엘리자베스 코트라이트를 만나 1786년 결혼했고 두 딸과 어릴 때 잃은 한 아들을 두었다. 먼로는 1787년 연방 법령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라델피아에서 있는 헌법 컨벤션에 참석하기를 원했으나 제임스 매디슨이 버지니아의 대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헌법이 승인을 받는 과정에 먼로는 버지니아 주의 대표로 활약했다. 1790년 먼로가 미국상원에 선출되었을 때는 공식적인 정치적 당이 아직 없었다. 정치인들은 크게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방주의자들”이라 불렀고, 연방 중앙정부 권한을 제한하고 개별 주(State)의 권한을 선호하는 세력을 “반-연방주의자들”이라 불렀다. 먼로, 매디슨, 제퍼슨은 다 반-연방주의자들이었다.


한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의 적이었던 영국과 더욱 가까운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먼로는 프랑스와 가까웠고, 그가 프랑스에 대사로 있을 동안에 작가 토마스 페인이 풀려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토마스 페인은 프랑스 혁명때 루이 16세 왕의 사형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갖힌 사람이었다. 워싱턴 대통령은 먼로 때문에 영국을 노하게 할까 염려하여 먼로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먼로는 더 가까워졌고, 혁명 전쟁 때 먼로는 워싱턴 아래서 싸웠고, 워싱턴은 먼로의 정치적인 진로에 큰 도움이 됐다. 1798년 먼로는 버지니아의 주지사로 당선됐고, 당시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간의 사이는 더 갈라진 상태였다. 1800년에 반-연방주의자였던 토마스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1803년 먼로와 목사였던 로버트 리빙스톤을 프랑스에 보내어 루이지아나 지역 땅 구매에 협상하게 했다. 당시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 1세는 놀랍게도 루이지아나 주 전체를 미국에 팔기를 원했고, 먼로와 리빙스톤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영역의 땅 구매에 성공했다. 그러나 먼로는 다른 두 가지 사명에 실패했다. 하나는 영국이 미국의 “모든 나라와 무역할 권한을 허락하라”는 것을 외교적으로 관철하지 못하여, 미국 제퍼슨 대통령이 “1807년 통상금지령”을 내려야 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무역하자는 외교적 제안에 스페인이 거절한 것이다. 1808년 대통령이 된 매디슨은 먼로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고, 그 자리는 다음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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