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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너,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겠다 2019-10-18 17: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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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아주 사랑하는 물건이 들어있는 작은 항아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금붙이가 들어 있거나 아니면 소중한 재물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신비감마저 느껴집니다. 흔히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 못하는 계륵(鷄肋)같은 존재” 또는 “소중하게 아끼고 보듬어 주어야만 하는 부담스러운 대상”을 지칭할 때, 이 “애물단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렸을 때,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자주 듣던 소리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애물단지”였습니다. “저거 아주 애물단지야, 애물단지!” 좋은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야단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애매모호한 말이었지만, “애물”이라는 단어가 왠지 “사랑하는 물건”(愛物)을 지칭하는 것 같아서 그런대로 싫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애물단지는 결코 매력적인 말이 아닙니다.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이 그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선, “애물”의 “애”자는 사랑 애(愛) 자가 아닙니다. “애”는 “창자”의 옛말입니다. “애가 탄다”, “애가 끓는다”, 그리고 “애를 쓰다”와 같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초조한 속 마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굳이 번역을 한다면, “속타게 하는 물건”입니다. 특별한 치료약이나 의술이 전무했던 옛 시절에는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삶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부모님들의 아픈 마음보다 더 애끓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애를 끓게 하는 “애물”은 곧 “죽은 자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지”는 원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를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단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죽은 아이가 들어 있는 작은 항아리를 뜻합니다.

 

지지리도 못살고 가난했던 시절, 영양실조도 많고 위생시설도 불결했던 그 때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되서 급하게 자신들이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찌 다를 수 있겠습니까? 죽은 아이를 묻을 수 있는 변변한 땅도 없고, 관을 구입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던 가난한 부부들은 자식을 야산이나 들판에 버릴 수도 없었고, 맨 땅에 그냥 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죽은 아이를 항아리에 담아 가까운 곳에 묻는 것이었습니다. 항아리가 묻혀 있는 주변을 돌들로 동그랗게 쌓아 분봉을 만들어 주었는데, 결국 “단지”는 죽은 아이의 무덤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아무대나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평생 끌어안고 살 수도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애물단지”는 언제 들어도 부모의 깊은 한(恨)이 서려 있는 가슴 아픈 단어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묻은 “애물단지”는 곧 그 부모의 “심장”입니다. 몇 주 전에 한국에 사는 친구가 애틀랜타를 방문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제법 통통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만큼 바짝 마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먼 애틀랜타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큰 아들을 보러 왔다고 합니다. 큰 아들이 플로리다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대학생이랍니다. “아니, 몇 살에 결혼을 했기에 큰 아들이 아직도 대학에 다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아들이 6년 전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나라에 갔기 때문에, “아들은 영원한 대학생”이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들의 무덤을 보러 온 것입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친구의 송장같은 얼굴도 전부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 마디 씁쓸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너,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겠다!”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버렸는지 친구는 움푹 패인 눈으로 하늘을 자주 응시했습니다. 한 숨이라도 크게 한번 내쉴 법한데, 머리 속이 텅 빈 사람처럼 그 마저도 잊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갑자기, 일찍 죽은 자식은 부모의 영원한 애물단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25년 동안 하면서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실로 엄청난 숫자의 자녀들이 부모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부모들은 그 죽은 “애물”들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단지”로 담았습니다. 대부분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단지의 뚜껑을 열어보며,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게 중에는 금방 자식을 따라간 부모님들도 있었습니다. 자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동안 친구의 깡마른 얼굴 때문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되겠습니까? 저에게도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애물단지”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마운 아들들에게 죽은 자식을 뜻하는 “애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작은 아들 놈이 안경을 깨뜨렸으니, 빨리 새 것으로 맞춰 보내라는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정말 연구 대상입니다. 미안한 말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텐데, 이 아드님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보통 일년에 한 개씩은 해 드시는 것 같습니다. 고굴절 안경이라 한번 주문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참 대책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도 모르게 카톡에 “애물단지”라는 말을 적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강하게 해 드시는 아드님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갑자기 그런 투정마저 할 수 없는 메마른 친구의 얼굴이 또 떠올랐습니다. 내일 새벽기도 시간에는 자녀들을 잃은 가엾은 부모님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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