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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밥이신 예수 2019-12-13 12: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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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주식”(主食)을 총망라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한국이나 아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쌀”을 밥으로 이해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빵”을 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이태리같은 나라는 스파게티같은 “파스타”를 밥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아무튼, 밥은 모든 생명체들이 매일 먹는 기본 음식입니다. 밥은 “생명”입니다. 밥은 이미 그 자체로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생명력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밥을 먹으면, 그 밥에 담겨 있는 생명이 그것을 먹는 포식자에게로 옮겨집니다. 곡식을 짐승이 먹고, 그 짐승을 또 다른 짐승이 먹습니다. 그러면서 “생명”이 계속해서 다음 포식자에게로 옮겨집니다. 밥에 있던 생명 에너지가 계속 살아서 그것을 소유한 포식자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은 생명의 절대 조건입니다. 밥은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하는 마지막 단계가 곡기를 끊는 것입니다. 밥을 멈추는 것입니다. 죽을 듯, 죽을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면서도 여전히 밥숟갈을 붙잡고 “죽”이나 “미음”을 떠먹으면, 그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것입니다. 계속 생명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 잘 먹으면,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장하고, 소화기관이 좋아도 밥 먹는 것을 멈춘다면, 머지않아 금방 생명이 끊어집니다. 밥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이 단식투쟁을 합니다. 밥 먹기를 멈춘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했다는 필살의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심오한 뜻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안타깝지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제스처로서 그 짓을 하는 것이라면 당장 그 바보 짓을 멈추어야 합니다.


밥 가지고 장난치면 정말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은 우리에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은 밥을 단지 살기위해서 먹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지, 먹기 위해서 사냐?”고 말씀하시면서, 먹기를 즐기는 사람을 “식충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기도 하지만, 또 먹기 위해서 살기도 합니다. 살면서 먹는 것만큼 큰 기쁨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인사 중의 하나가 “밥이나 한번 같이 먹읍시다”입니다. 밥은 생명이기 때문에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결국에는 “먹기 위해서” 입니다. 먹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합니다. 먹는 것이 끊어지면 언제나 “혁명”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결국에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도 결코 물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밥은 곧 힘이기도 합니다.


밥을 사주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든, 재정적으로든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습니까? 당장 밥을 한번 사 보십시오! 그러면 힘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밥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인기가 좋습니다. 반대로, 맨날 얻어만 먹는 사람은 항상 얻어 맞습니다. 안보이는 사석에서 언제나 얻어 터집니다. 뒷담화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무리 없어도 적당하게 밥을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푸대접을 각오해야 합니다. 밥이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교도소에는 사형수들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형집행일이 다가오게 되면 불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집행이 있기 전 날에는 사형수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마음껏 제공해 줍니다. 이것을 “마지막 식사”(The Last Meal)이라고 합니다. 스테이크, 갈비, 랍스터, 그리고 심지어는 달달한 술에 이르기까지 먹고 싶다는 것을 그대로 구입해다가 수감실에 넣어 줍니다.


사형수들이 처음에는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 마지막에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 땅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전에는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인지를 몰랐는지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어떤 사형수는 “인생은 밥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밥이 대단한 것이기에 밥을 나누는 것이 곧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한다면 밥을 나누어야 합니다. 예전에 거지들은 의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게 되면 그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느 집에서 잔치를 벌이게 되면 동네의 온갖 거지들이 다 모여 들었습니다. 밥 정보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거지들은 “밥을 나누지 않는 것은 거지같은 짓이다”라는 정말 거지같은 철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신약성경 최고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한 사람의 도시락 분량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나누었더니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밥을 나누는 것이 최고의 기적입니다.


“장 지글러”(Jean Ziegler )가 지은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보면, 온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생산되는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람들이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혼자서 다 먹으려는 욕심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식량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절반이 매일 굶어 죽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밥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하늘의 밥으로 내어 주신 분입니다. 하늘의 부요함을 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화육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제일 먼저 거하셨던 처소는 짐승의 “구유”였습니다. 짐승들이 먹는 밥그릇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밥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자신의 낮추어 짐승의 여물통 속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만찬 때마다 고백하는 것처럼, 주님의 몸과 보혈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밥이 되는 겸손 밖에는 구원의 도(道)를 이룰 수 없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탄은 언제나 구유에서 시작됩니다.


그 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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