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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목사 | 일평생 환난의 축복(왕상11:14-43) 2020-01-11 11: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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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난(왕상11:9) 후부터 일평생 환난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2)’라고 고백했으니 솔로몬에게 이 일평생 환난이 최고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택자인 하나님의 내 새끼, 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환난을 주실까요?
 
첫째, 하닷의 복수심을 일으키십니다.
13절에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시고, 14절에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대적이 되게 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니, 하나님은 솔로몬을 징계해서라도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환난이 솔로몬에게 오기 시작한 것은 솔로몬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연히 생긴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론도 ‘이렇게 해서’입니다.
 
하닷은 형제 나라 에돔의 왕자입니다. 다윗 시대에 요압이 에돔에 여섯 달을 머물면서 에돔 사람을 멸할 때, 하닷은 그의 심복들에게 구출되어 애굽으로 망명합니다. 하닷은 바로의 처제와 결혼하고 애굽의 도움을 받았지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자기 잘못 없이 자기가 겪은 살육의 당사자인 다윗과 요압만 기억합니다.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했는데 어린아이처럼 구원의 시각이 없이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 것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편, 하닷의 반란에도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있습니다. 요압이 에돔을 죽일 때 명분은 거룩한 전쟁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은 것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덮어주셨다가 때가 되어 솔로몬을 징계하시기 위해 요압의 죄를 생각하고 심판하신 것도 있습니다. 하닷의 복수감정까지도 하나님나라를 위해 쓰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시대에는 복수의 칼날이 잠잠히 있다가 솔로몬이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반역도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복수심은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습니다. 망하기 전에는 힘이 듭니다. 예수가 들어와야 복수의 실체가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렇게 분열이 되어 나중에 둘이 완전히 망한 다음에 하나가 되어 돌아옵니다(겔 38). 내가 하닷이라면 에돔인 조상의 죄를 회개하기 바랍니다.
 
둘째, 르손의 적개심을 일으키십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아스다롯과 밀곰 우상은 하닷의 복수심 정도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르손의 적개심을 이용해서 솔로몬을 징계하셔야 합니다. 르손은 다윗이 소바를 칠 때, 주인을 버리고 도망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왕이 된 자입니다. 솔로몬과는 관계도 없는데 오직 솔로몬이 다윗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보복을 합니다. 사회에 불만을 가지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려와서 나라가 굉장히 흥왕할 줄 알았지만, 결론은 애굽이 아닌 이렇게 생각도 못 한 잔챙이들인 하닷과 르손에게 수치를 당하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내 주변에 말도 안 되는 칼날과 가시는 나의 욕심을 일깨우려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으키신 사건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든 죄성을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닷과 르손이 본격적으로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 기간은 솔로몬 말년부터 죽을 때까지의 기간인데 그럼에도 ‘일평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말년에 당한 이 괴로움이 인생 전체에 걸쳐 당한 괴로움과 견줄 만큼 컸기 때문에 솔로몬의 체감온도는 ‘일평생의 환난’이었습니다. 원어로 보면, 25절의 ‘환난’과 6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의 ‘악’이 같은 단어입니다. 환난은 솔로몬의 악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환난이 왔다면 반드시 내 죄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셋째, 여로보암의 배반의 시기심으로 대적을 일으키십니다.
26절부터는 정말 무서운 내부의 반란이 시작됩니다. 외부보다 내면의 죄가 더 더럽고 무섭습니다. 솔로몬이 믿음의 지체가 없이 그렇게 계속 두로 왕, 바로의 딸과 외부로 돌더니 결국 심복 여로보암의 배신으로 무너집니다. 애굽이 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좋아해도 믿음의 공동체가 여러분의 가장 큰 보호막인 줄 아셔야 합니다. 적이 쳐들어오는 데는 까닭이 있다고 합니다. 다윗성을 보수하려는데 유다 지파인 솔로몬이 유다 지파는 대장을 시키고 에브라임 지파, 즉 요셉 지파에게 일을 시킨 것입니다. 지금 에브라임 지파는 늘 유다 지파를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 솔로몬이 사람을 잘못 쓴 것입니다. 이 일로 여로보암이 개혁의 빌미를 잡았습니다.
 
내가 잘못 뽑은 여로보암이 하나님과 나를 분열시키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누구의 편에 설까를 고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이혼을 막기 위한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등장하는데 솔로몬이 워낙 높은 자리에 있으니 만나지 못하고 여로보암에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비극입니다. 여로보암에게 열 나라를 찢어주되 솔로몬의 생전에는 아니라고 했는데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이르실 때까지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솔로몬도 여로보암이 쳐들어오면 이때라도 회개해야 하는데 금세 죽이려고 합니다. 솔로몬이 불신결혼해서 애굽의 덕을 볼까 했지만, 결국 애굽은 여로보암을 돕습니다. 사람을 의지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반쪽짜리 회개를 해서 다윗성에 장사가 되었다고 하니 할렐루야입니다. 그가 다윗의 계보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목회하다가 실패한 후, 세상적 음란과 죄악을 다 거치고 도박과 약물중독에 빠졌던 한 집사님은 기초수급자로 살면서 아내에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게하고 자녀를 폭행하여 세 아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난 가운데 아내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말씀이 들리지 않았지만, 이혼도 안 하고 오래 참고 기다려준 아내를 따라 말씀을 듣다 보니 삼십 년 중독이 끊어졌고, 지금은 가난해도 영적 부자가 되어 대리운전하면서 자신은 부목자로, 큰아들은 청년부 목자로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말씀을 두고 걸어가면 우리 자녀들도 말씀을 두어 결국에는 이렇게 다윗성에 다 같이 올라가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될 줄 믿습니다. 지금 어떤 환경이라도 일평생 환난이 끼치는 축복을 맛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양재 목사
(우리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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