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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목사 | 선택 (왕상12:1-24) 2020-01-18 15: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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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냐 자신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남편에게 알고보니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드디어 “집을 팔아서 그 여자와 살집을 구해 달라”고 했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날마다 갈등하며 화평을 선택하며 가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기에 믿음이 더 있는 사람이 영적인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럴 때 이혼하지 말라고 하면 욕먹을 일입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선택은 극심하게 고난을 감내해야 도울 수 있습니다. 모태신앙인 르호보암의 선택이 왜 틀렸을까요?
 
첫째, 구속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왕이 된 르호보암이 첫 번째 한 일은 북이스라엘의 중심 성읍인 세겜으로 갔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요셉 지파를 필두로 북부의 열 지파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기 전 사울과 열 지파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험산준령을 넘었는지 기억합니다. 다윗이 자기 죄를 보며 겸손했기에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헤브론으로 찾아와 왕이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여호와 신앙을 저버리자 북부 지파의 마음은 여로보암에게 기울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요셉지파일 뿐만 아니라 멋있고 의롭고 강한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여로보암의 반역을 작정하고 계셨습니다. 힘들게 통일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지는 상황 앞에 르호보암이 서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라면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야 하겠지만 구속사적인 시각으로는 해답이 다릅니다.
 
죄보기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자기 죄를 못 보면 영적 선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영육은 일원론이기 때문에 영적인 선택은 세상에서도 최고의 선택입니다. 인간 최고의 감정은 회개이며 회개는 죄고백이 수반되며 구원으로 인도되는 통로입니다. 요셉은 마지막에 구원의 시각으로 차남(에브라임)을 장자로 축복한 아버지 야곱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였다”(창 48:17)고 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구원의 시각으로 동침한 며느리 다말에게 “그는 나보다 옳다”고 수치의 죄 고백을 했습니다.(창 38:26) 성경은 구원의 책이기에 요셉과 유다 중 누가 더 구원의 편에 서 있는지 모델을 제시하여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르호보암은 다윗의 손자라도 구속사가 임하지 않았기에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이 르호보암을 찾아가 솔로몬의 역군제를 풀어달라고 합니다. 내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자녀대까지 책임을 묻습니다. 무엇이든지 언젠가는 다 드러날 줄 알고 큐티하는 것이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여로보암은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르호보암은 분간을 못합니다. 리더십이 없는 것은 항상 문제를 자기편에서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유다 지파는 대장삼고 요셉 지파에게는 고역을 시켰기 때문에 북부와 남부의 지역감정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북부나 남부나 천 명의 아내의 우상숭배로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북부 지파의 원망에 대해서 르호보암은 귀를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죄를 보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대답이 쉽게 나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죄보기가 안 되기 때문에,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5절)고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간에는 기도하고, 누구와 의논하고, 누구의 말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르호보암이 먼저 노인을 찾았습니다. 노인들은 영원한 왕이 되려면 백성을 섬기라고 자문을 제대로 해주었지만, 원어로 보면 르호보암은 즉각적으로 노인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어린 사람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이 노인들과 의논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소년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책임감도 없이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
 
구속사를 모르면 성경을 자기에게 적용하지 못합니다. 르호보암은 의견을 구했지만 이미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말씀이 안 들립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오직 사건만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면 새로 창조할 수 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친구를 위해서 기도할 때 스펙 좋은 친구가 아닌 예수 안에서 친구를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죄를 보라는 처방을 듣지 않으면 들을 말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하나가 되고 서로 자기 죄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15절에 르호보암의 분별없는 결정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판단이 어리석을지라도 때로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자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들어야할 말을 안 듣는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난 죄의 징계이기도 하지만 택자는 모든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난 축복이고 징계입니다.
 
셋째, 말씀을 이루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이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냐” 면서 갈라서게 됩니다. 유다 지파만 르호보암을 따랐는데,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따른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로보암을 따른다면 이 세상 가치관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 한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갑니다. 민심이 여로보암으로 향하자 마음이 급해진 르호보암은 화해의 사절로 역군 감독인 아도람을 보냈지만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 상황이 되었음에도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뜻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나라를 되찾고자 십팔만 용사를 모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한 것은 회개하지 않고 형제의 나라와 전쟁을 하겠다고 합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르호보암이 말씀을 따라 마음을 돌이켰습니다(24절). 왜 르호보암이 돌아갔을까요? 르호보암이 회개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다스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한 지파를 주리라”는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말씀을 보면 자기 주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언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큐티는 예언을 미리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듣는 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십팔만 명의 용사가 준비되어도 말씀이 있어서 포기하는 것이 말씀 인도이고 택자의 길입니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말씀 따라 순종하면 후에 여기서 예수님이 오십니다. 솔로몬이 회개를 했기에 다윗의 등불로 인해 연약하지만 극적으로 르호보암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승리한 여로보암을 연호하지만 성경에서 가장 악한 인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 여로보암입니다. 이렇게 선택이 중요합니다. 잘난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이야기를 듣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가 가장 쉬운 길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지막이라도 회개한 사람이 올라갑니다.
 
김양재 목사
(우리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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