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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목사 | 온라인 예배, 더욱 긴장해야 합니다 2020-05-23 10: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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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씀을 듣고, 읽고, 보면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저렇게 살면 망하는구나. 아, 저렇게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사람이 되는구나. 아, 안될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되는구나. 그러면 나도 죽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야지.’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배우므로 점점 더 자신의 인생을 복되게 변화시켜나가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道(말씀)를 받아 옥토밭같은 마음에 그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맺는 인생이라고 축복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 밭에 큰 돌멩이 같은 것이 있는 경우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안타까운 사람들 혹은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이와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기생각이라고 하는 큰 돌멩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생각이 늘 앞서서 말씀을 순전하게 받지를 못합니다.

유다는 처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을 때부터 자기 생각으로 가득찼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생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한 사람입니다. 결국 마음 속에 있는 그 돌들로 인해 말씀을 듣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 왕 때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각기 거짓 예언으로 폼나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속에 거짓 영이 들어와서 자기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진짜처럼 행동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진짜 선지자의 뺨을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언제 하나님의 영이 너에게 가서 그런 말을 하더냐?’고 호통까지 칩니다. 가짜가 훨씬 더 진짜같이 말하고, 진짜처럼 행동하고, 진짜에게 ‘너 왜 그렇게 사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가짜는 그저 가짜’일 따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도 그런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울의 마음 속에도 언제나 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큰 돌멩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돌멩이는 속히 부수어져서 고운 가루처럼 부드러운 흙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세월이 흐르게 되자, 결국은 하나님앞에 버림받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왕위와 가문을 보존하고자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고생하였지만, 결국에는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왕의 자리와 자신과 가족까지도 책임지지 못하는 그런 복없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울로 인한 가문의 멸망을 보십시오. 사위 다윗을 죽이고자 애쓰던 그 흔적들이 둘째 딸 미갈 가정의 불행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죽이고자 하는 친정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느 딸이 제대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신앙도 엉터리처럼 되어 다윗을 향해 조롱의 말을 내어 뱉다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불행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요나단, 리스위, 말기수아 세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아버지 사울의 블레셋과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같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요나단의 아들 손자 므비보셋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에 유모가 므비보셋을 들고 뛰다가 떨어뜨려 평생 장애인 절뚝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모가 왜 그렇게 급히 뛰었겠습니까? 할아버지 사울이 다윗에게 범한 죄를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반응한 것입니다. 사울 할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의 선택이 손자의 인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분명하게 끼친 것입니다.
 
사울 왕에게도 많은 돌이킴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엔게디 굴에서 생명을 구해준 다윗 앞에서 눈물을 드러낸 것이나, 예전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도 하였던 신앙의 추억들이나, 아들 요나단의 올바른 말들이 분명히 그의 신앙의 양심을 자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열매의 자람을 방해하는 돌덩이들을 고운 가루처럼 부숴내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무엘이 폐위를 선언한 배경을 보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있습니다. 전시상황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기다려도 오지를 않습니다. 상황은 심각해져갑니다. 적군은 쳐 들어오고, 한명이라도 더 싸워주어야 할 백성들은 두려워서 숨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울 왕은 정한 날 이레가 되자, 기다리지 못하고서 번제와 화목제를 가져오라 하고서 자기 스스로 예배를 드려버립니다. 그런데 사울이 드린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엘 선지자가 곧 이어 도착합니다. 날짜차이가 아니라 시간차이였음을, 전쟁의 승리라는 자기 전략전술이 기다림이라는 믿음보다 훨씬 더 컸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도착한 사무엘이 묻습니다.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은 3가지 변명을 합니다. 적군은 쳐들어오고,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오지 아니해서, 자신이 예배를 부득이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침범하는 미친 짓을 했다는 뜻입니다.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설명 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의 삶이 그런 이해들을 따라 가다보면 결국에는 ‘자기생각’이라는 큰 돌멩이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이 있고 그 법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형편과 상황에 따라 뒤집고 만다면, 이것은 분명히 망령된 것이 됩니다. 사울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정말 위급한 상황, 심각한 형편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편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환경과 상황이 되었기에, 오히려 더욱 주의하고 더욱 긴장하고 오히려 더욱 약속의 말씀에 착념하지 않으면 세상의 상황과 조건들 앞에서 신앙과 삶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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